근무하는 직장 옆 공터에 작약 한 송이가 피었다. 초록 잎이 무성한 사이로 붉은 꽃잎을 펼치며 반짝반짝 사위를 빛내고 있었다. “드디어 얼굴을 보여주는구나.”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작약은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부는 미풍에 하늘하늘 고개를 흔들었다.봄부터 여린 새싹으로 돋아나더니 하루하루 잎을 늘려가는 모습에 오며 가며 눈이 많이 가던 차였다. 꽃대가 솟아오를 땐 이제나저제나 또 기다렸다. 언제쯤 수줍은 듯 잔뜩 웅크린 채 얼굴을 덮고 있는 붉은 봉우리를 활짝 열어 보일까. 며칠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작약은 소리 없이 피어났다.유
대전지역 인구는 2014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여 2020년 현재 146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생산연령 인구도 2014년 113만명에서 2020년 106만명으로 급감하고 있고, 다른 지역으로의 인구유출도 지속세여서 저출생 정책에 대한 점검과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그동안 대전시의 저출생 정책은 난임부부 시술비, 임신부 철분제 보급, 고위험 임신부 의료비 지원 등 보건·의료 비용의 지불이나,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등 출산‧보육‧돌봄 서비스나 단순한 비용지급, 기타 프로그램 지원 등 단발성 정책이었다.그러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헌혈 급감으로 혈액수급이 어렵다고 한다. 지난 해 본인이 몸담고 있는 대전온누리신협 임직원 및 조합원은 단체 헌혈행사를 가진 바 있다. 올해도 오는 25일에 신협 본점에서 헌혈 캠페인과 함께 단체 헌혈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우리 대전온누리신협 직원 중에는 헌혈예찬론자가 있다.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자‘금장’(헌혈 50회 이상)을 수상한 직원이 있어 귀감이 된다. 그 주인공은 권모 대리로, 2002년 처음 헌혈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51회의 헌혈을 하며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권 대리는
영화에 평점을 남기는 앱을 이용한 지 꽤 오래됐다. 요즘 프로그램들의 알고리즘은 매우 정교해서, 내가 남긴 평점이나 ‘좋아요’ 갯수를 바탕으로 영화나 동영상을 골라서 추천해주는데, 이게 꽤 잘 맞는 편이다. 공연기간 중이었다. 휴식 중 숙소에서 영화를 보는데, 내가 어릴 적 만점 평점을 주었던 영화였다. 팬심도 발동하고 예전 추억도 되새길 겸 시간을
지난 주말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집 친정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집 근처 화원에 들러 붉은색과 분홍색이 잘 어우러진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사고, 용돈도 준비했다. 하늘엔 황사와 미세먼지로 가득해 먼 산의 초록이 온통 회색빛인데 그래도 오늘 찾아뵙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길을 나섰다. 마치 풍경화를 걸어놓은 듯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림이 되는
5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단어에 맞게 푸르른 신록이다. 이맘때가 되면 피천득 님의 5월이라는 시를 읊조린다. 오월에 대한 시인의 느낌이 전문에 드러나 있다. 서두에는 찬물로 갓 세수한 청년의 얼굴로 표현했고,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라고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른 오월 속에 있으니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라면서 탄식 비슷하게 노래했다.출근길에 보이는 모란이 아름답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친정집 화단에 여전히 곱게 피어 있을 모란이 오버랩 되어 쓸쓸하다. 많은 사람이 오월을 예찬하지만, 오월이 되면 어느 때는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서울시장 후보로 완주한 4명의 여성후보들이 여성·청년·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공약을 제시하였지만, 보궐 선거의 발단이 성비위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정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여성후보들은 거대 정당의 주요 후보와 맞붙어 차별화된 자신의 특징과 색깔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아동 보호·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을 통해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지역사회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보호, 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 제공, 보호자와 지역연계 등 통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동·청소
프랑스 영화의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었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말했다. “언젠가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영화로 찍고 그것을 나누는 시대가 올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우리는 SNS와 유튜브로 자신의 동영상과 이야기들을 열심히 찍어서 공유하는 중이다. 트뤼포 감독 사후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선 한 비디오 대여 업체가 영화 DV
길옆에 핀 꽃만 봐도 설레는 봄이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어느 마당 깊은 집 대문 옆에는 오래 참았다는 듯 목련이 반짝반짝 입을 열어 봄 냄새를 풍긴다. 아파트 건너 야트막한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마을을 이룬 전원주택가에도 온통 연노랑에 분홍빛이 천상 교목이 봄을 만나 꽃을 피운 것이 틀림없다.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내린 봄비로 소소한
일상에서 요구되는 돌봄,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는 청소, 고객의 불편을 제기하는 민원 응대는 주로 누가 담당하고 있을까?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평소 그 고마움에 대해 잘 체감하지 못하는 무수한 그림자 노동. 주변에 항상 있지만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그 분들은 ‘투명노동자’라 불린다. 지난 3월 8
‘뉴욕의 왕궁’이라는 별칭을 가진 미국 최고급 호텔이 있다. 백만장자 월도프 애스터가 1893년 세운 13층 규모의 월도프 호텔과 1897년 세운 아스토리아 호텔을 합쳐, 1931년 10월 문을 연 호텔이다. 현재는 파크애비뉴와 렉싱턴애비뉴 사이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47층 규모의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며 총 객실 수는 1423개이다. 1949년
오페라 공연시즌 중이었다. 공연장 근처의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러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식당에서 종업원분들이 TV를 보며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음식을 서빙하다 갑자기 어떤 배우가 나오자 화를 내셨는데, 당시 두 자리 퍼센트로 시청률 선두를 달리던 아침 드라마의 열혈 팬이셨던 모양이다. 시어머니가 나오고, 맘에 안 드는 며느리감에게 돈봉투를 건
동료 교사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일 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함께 생활하던 좋은 직장동료였다. 매사에 손과 발이 빨라 솔선수범은 기본이고 재잘재잘 참새를 능가하는 분위기 전도사였다. 우리는 그녀로 인해 언제나 즐거웠고 힘든 일도 힘들지 않은 듯 늘 하루가 봄날 같았다. 다른 한 교사는 이번에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하루에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고강도 거리두기로 어느 때보다 힘겨운 설 명절이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 19로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만남의 정을 나누지 못하고, 문자나 통화로 간단 안부를 확인하는 연휴를 보낸 듯 싶습니다. 장거리 이동과 가족간의 모임은 예년보다 많이 줄어 들었고, 모인 가족들도 마음 편히 모여앉아 오순도순 정을 나누기도 힘들었을 것입
최근 스마트폰 대중화에 따라 인터넷, 모바일뱅킹 등 온라인·비대면 전자금융 거래가 보편화 되고 코로나 19위기로 인해 더욱 가속화가 되고 있다.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연도별 비대면 금융거래 규모의 증가 추이를 6개 부문 결제·여신·수신·증권·보험·기타 등으로 구분해 살펴보면 평균 5배 이상 거래 규모가 증가했다.
유명 교향악단 연주가 TV에 나온다. 지휘자가 있고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90명까지 각 악기 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를 보며 일사불란하게 연주를 이행한다. 세상이 발전해서 AI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 곡을 연주한다. 필자도 수년 전에 대전시립교향악단과 AI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에서 협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눈이 내렸다. 사람도 세상도 모두 잠든 지난밤을 틈타 꽤 많이 내렸다. 아파트를 에둘러 싸고 있는 소나무에도, 도로변 이팝나무 가지에도 눈송이는 탐스럽게 꽃처럼 피어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이제 휴면기에 접어든 텅 빈 들녘은 물론 아파트 길 건너 교회 뾰족지붕 탑에도 눈은 온통 순백의 빛깔로 고요히 내려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새해 들어 두 번째 큰 눈이었다.유년시절 해마다 겨울이면 내 고향에도 눈이 자주 내렸다. 밤새 소리도 없이 소복소복 내려앉아 아침에 일어나면 넓은 뜰 안이 온통 흰빛으로 눈이 부셨다. 마당 한 귀퉁이
한 해가 조용히 저물고 새 해가 밝았습니다. 물러가지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덕분에 다른 어느 해보다 속 시끄럽던 2020년도 흐르는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나는 행인의 발걸음을 가벼이 해주던 음악이 들려오지 않고, 오가는 인파들로 넘쳐났을 거리가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연말연시의 풍경은 낯설기만 합니다. 2020년 한
벽에 걸린 달력이 흔들리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 너머 바람 탓이다. 사시사철 온갖 희로애락을 담아 무거울 법도 하련만 달력은 들어오는 바람에 제 몸 하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 펄럭이는 소리가 구원의 아우성으로 들린다. 서둘러 창문을 닫고 달력을 바로잡는데 12월이란 머리말 숫자가 눈에 성큼 들어온다.
연주자들은 보통 한두 개쯤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공연 직전에 초콜릿을 먹었는데, 공연 때 목구멍에 남은 걸쭉한 존재감에 제대로 발성이 되지 않아 공연을 망치게 된다면 이후로는 공연 전에 점성이 강한 음식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반대로 특정 음식이나 행위들이 공연에 도움이 되었다면 이후로는 반드시 그 루틴을 반복하여 공연 전 준수할 리스트로 여기
살아가면서 알게 된 세상의 이치가 몇 있다. 그중 하나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둘의 공통점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 타자(他者)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없다면 모든 게 나에게로 향하니 공짜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해도 나쁜 짓을 해도 그 대가는 내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먹는 일상의 행위
‘차가운 별빛 아래 풀벌레의 애조마저 뚝 끊어지고 서리가 하얗게 내리며 가을이 깊어지자 국화가 시절을 만난 듯 탐스러운 꽃을 피웠다. 하나는 황국, 하나는 자국이었다. 한 쌍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가을날 초례청에 서 있는 신랑 각시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워서 집안이 경사스러웠다. 국화꽃은 소설(小雪) 무렵까지 내내 피어서 아버지의 창을 우수로부터 막아 주었다.’ 목성균 선생의 수필 「국화」에 나오는 문장이다.목성균 선생의 「국화」는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한 당신 영감님의 적막한 만추를 생각하여 팔십 노모가 거실 창문 앞마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마녀와 거래하여 목소리를 사람의 다리로 바꿨던 인어공주가 있었다. 그녀는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며 왕자를 축복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인어공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 트라이톤 해신이 친히 출정하시어 왕자와 함께 문어 마녀를 물리치고, 인어공주는 왕자와 결혼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고대 그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캠핀스키 호텔로 삼성 사장들과 임직원 200여 명을 불러 모아 회의를 주재하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신(新)경영 선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지금까지도 삼성 60년사에서 세간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 회장의 어록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