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적지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원하든 원치 않든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며 더불어 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남보다 많아서 우리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일 것이고, 또한 재능이 출중해 누군가에게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기부의 방법으로 돈이 많은 경제인이나 연예인이 고액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뉴스에 나오는 거액의 기부자는 꼭 부자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분은 양말을 기워 신고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다. 집에 걸었더니 마치 봄이 와 있는 듯 화사하다. 초록색 잔디위에 나무 세 그루가 그려져 있고 빈 나무벤치가 놓여 있다. 바탕은 온통 노란 색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록과 노랑의 색감과 여백의 미가 있어 발을 멈추게 한다. 그림을 쳐다 볼 때마다 그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날은 직장에서 지친 딸과 마주 앉아 위로를 하고, 어떤 날은 파파할머니가 된 내가 손주와 앉아 그의 엄마이면서 내 딸의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날은 남편과 앉아 우리가 함께 했던 이야기를 오래 나누는 상상을 한다. 그림 한
오래 전 결혼하면서 시골 마을 허름한 집에서 16년 정도를 살았다. 마루 하나로 이어진 부엌과 방, 그리고 불을 때는 방이 있는 작은 집이다. 화장실은 재래식이고 대문도 없는 집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콩깍지가 씌웠는지 어느 것 하나 부끄럽지 않았다. 결혼 전 살았던 읍내 친정집에서의 생활보다는 불편한 점도 많았고, 주변 환경도 달랐다.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물은 가끔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옆집에서 필요한 만큼만 통에 받아다 사용했다. 여름이면 뒷 산에서 날아오는 이름 모를 벌레와 모기로 문을 열기가 겁났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을 화양연화라고 하는데, 우리 人生에서 봄날이 과연 언제였던가?지난날을 반추해 보면서 정말 우리가 행복의 절정을 이루고 별이 반짝반짝 빛났던 시기가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질풍노도의 시기로 젊은 날의 꿈과 희망으로 점철되어 활화산의 불꽃처럼 타오르던 열정이 가득한 20대, 人生에서 설익은 자신감과 포기가 함께 교차했던 30대, 이 시기는 때론 좌절감을 맛보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가지치기를 해야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농익은 과일처럼 쓴맛 단맛을 함께 알게 되면서 반드시 마음먹은
아이들이 서울에 있어 가끔씩 올라간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서울에를 갔다가 딸과 점심을 먹고 헤어져 터미널에 도착했다. 언제부터 터미널 양쪽으로 먹거리가 생겼다.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성격이라 음식이 있는 쪽에는 관심이 없는데 차안에서 목이 마를 것을 대비해 물은 하나씩 산다.터미널 입구 쪽 목 좋은 곳에는 대형 체인점 마트가 하나 있고, 더 외진 곳 화장실 들어가는 쪽으로 일반가게가 하나 있다. 체인점 마트 앞에는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데 안쪽의 가게에는 늘 사람이 없다. 그게 안타까워 물을 살 때 꼭 안쪽 가게에서 사고 잠시 머
커다란 나목(裸木)에 기둥을 이루며 흘러내려 굳어진 얼음이 작품처럼 서 있는 카페 앞에 걸음을 멈췄다. 몇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가 커다란 고드름을 달고 있었다. 겨울 추위를 오롯이 견디고 있는 나무에 주인이 수십 번 물을 뿌려 만들어 낸 듯 보인다.새해가 시작되고 보름이 다 되어 가지만 새로움과 희망을 생각할 겨를 없이 바빴다. 시댁 남매계 모임도 빠지고 싶었지만, 가까운 진천으로 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참석했다. 총무를 맡고 있는데도 당일 준비하느라 가장 늦게 도착했다. 그 날은 시끌벅적 술판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남
마음 산책중이다.동쪽 창가에 내려앉은 햇볕을 마주하며 허브차가 담긴 컵을 들고 내가 살아온 날들의 삶의 시간들을 조심스레 마시며 걷는다.‘한 번씩 욕심을 버리고 노여움을 버릴 때마다 그래그래 고개 끄떡이며 순한 눈길로 내 마음에 피어나는 기쁨 꽃 맑은 꽃. 한 번씩 좋은 생각 하고 좋은 말 하고 좋은 일 할 때마다 그래그래 환히 웃으며 고마움의 꽃술 달고 내 마음 안에 피어나는 기쁨 꽃, 밝은 꽃.’ 여전히 분주하게만 살아온 나날들에게 난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잘 살아왔는지 물어보며 이 해인님의 ‘기쁨 꽃’이란 시를
처음 시낭송 강의 제의를 받았을 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경험도 없어서 사양하였다. 하지만 담당자가 동아리형식으로 편하게 하자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해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도전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모르는 분야이기에 준비부터 열심히 해야했다. 프로그램 이름부터 고민 끝에 ‘詩끌詩끌 시낭송’이라고 지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겨울비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온기 가득한 거실과 달리 밖은 낮인데도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다. 무심코 바라본 달력은 12월의 마지막을 며칠 남겨 두고 있다. 누군가 세월은 나이대로 속도를 내며 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한 해가 끝나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2월이
두 손을 마주 잡더니 큰 병에 든 음료수와 포장 테이프 두 개를 건넨다. 줄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더 줄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 마음이 느껴지면서 감사함에 마음이 찡해온다.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면서 언제든지 이곳에 오면 자기를 만나고 가라고 한다. 우편물 취급소를 하는 분인데 남편과 아주 친하게 지냈나 보다. 칠십을 넘긴 분이 서운한 마음을 그
처음엔 서로가 낯설었다. 언어와 문화 환경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을 만나고 한국어를 온몸으로 가르쳤다. 시간은 흘러 여름을 지나고 추운 겨울이 되어, 지난주에 수료식이 있었다. 충주세계무술연맹에서 문화동반자(Cultural Partnership Initiative) 사업으로 7월에 8개국에서 10명을 선발하여 5개월여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고갱이를 파란 잎으로 감싸 안고 토실토실 잘도 자랐다. 지난해보다 늦게 심어 제대로 배추 모양이나 나올까 걱정했는데 텃밭 가득 싱싱한 잎이 나풀거린다.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동생에게 전화했다. 김장하러 오라고. 400여 포기나 되는 배추를 한꺼번에 절이자니 소금 소비도 많고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내 것부터 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친구도 주고 제주에
주말저녁, 오랜만에 금방 지은 밥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반찬은 많지 않지만 햅쌀로 지은 밥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식탁에 남편이 얻어 온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내 놓고 찰기가 흐르는 밥 한 그릇을 펐다. 밥상을 차려 두고 돌아서니 함께 먹자며 채근한다. 간식을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갓 지은 밥과 김장 김치가 구미에 당기고, 마주 앉아 식사한
병원에 입원했다. 몇 달을 고생하던 기침이 멎질 않더니 천식환자처럼 숨을 쉴 때마다 그렁그렁한 소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혹시 폐렴일까. 결핵일까. 그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했어도 낫질 않아서 가슴 졸이다가 보따리 싸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입원한 것이다. 어릴 적 이웃에 살던 어른이 숨을 쉴 때마다 나는 소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렸다. 해소 천식이
가을이다. 문 밖을 나서면 노랗고 붉게 물든 가로수가 보이고, 멀리 시선을 두면 산 전체가 노을빛이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고운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혼잣말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찰나의 시간에 가을을 즐긴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정이 있어서 이동하는 동안만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방송사 사정으
소음도 사라진 시간.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시골이라 늘 그러려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골구석까지 들어선 공장들 땜에 평소엔 시끄럽기 그지없다. 한가위 명절이라 산업현장도 휴가에 들어갔다. 이런 날이 설 명절과 추석명절, 일 년에 두 번은 된다. 오랜만에 한가로운 들길을 걷는다. 오로지 나 혼자 시골 전체를 공유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참 좋다. 가뭄에
토요일 오후, 모처럼 화장을 곱게 하고 친구 남동생 결혼식에 갔다. 어릴 적 보았던 친구 남동생은 마흔 중반 넘어 다행히 짝을 만났다. 40년 지기 친구도 전문가의 솜씨로 단장하고 고운 한복을 입고, 문 앞에서 언니와 손님을 맞고 있었다. 하객 중에는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에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 왔다. 서로 바
다리 떨리지 않을 때 여행을 많이 해라.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생전에 시어머님께서도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하셨다. 나이 들면 걷는 것도 느려지고 차를 탈 때도 빨리 타지 못하니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며 젊을 때 많이 다니란다. 아직은 다리 떨리지 않고 가슴이 떨리니 여행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어느새 가을이 코앞에 바짝 다가왔다.
열흘간의 황금같은 연휴에 집에서 추석특선영화를 빠짐없이 보면서 밤낮이 바뀐 시간을 보냈다. 연휴가 끝나고 다음날은 긴 연휴의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힘들었다. 일상으로 제 자리를 찾는 동안 벌써 10월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토요일 아침, 재료가 가득 들어 있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북(BOOK)페스티벌’ 체험코너를
어지럽다. 머리가 무거워 앉아 있을 수조차 없다. 체력이 바닥이 난 걸까. 먹는 기쁨도 사는 기쁨도 없어졌다. 이런 날은 점점 늪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힘이 든다.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 진료예약이 되어있다. 딸하고 이틀 정도 함께 지내려고 미리 서울로 갔다. 토요일 오후에나 시간이 나는 딸과 조카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지난 토요일 앞치마를 두르고 친정집에 갔다. 명절을 앞두고 친정집 청소를 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반나절을 넘게 청소를 하고 끝날 무렵 큰 조카가 들어 왔다. 의례적인 인사를 몇 마디 건네고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리가 생겼다. 남동생에게는 딸이 두 명 있는 데 딸 둘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정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할머니와 살았다. 조카들은 말썽
대파가 싱싱하게 잘 자랐다. 토실토실한 것이 상품가치도 있는 것 같다. 실낱같은 파 모종을 주기에 과연 자랄까 걱정했었다. 죽으면 그만이고 살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대충 심었다. 귀촌한 지 9년째이다. 내가 지은 농산물은 보기엔 허접하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멋지게 잘 지은 것 같아 뿌듯하다. 가뭄이 너무 심해 물을 준
시끌벅적 밝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들어온다. 가방을 멘 채 질문이 쏟아진다. 오늘은 무엇을 만들 건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방 안을 기웃거린다. 비밀이라고 조금 후에 수업시작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듯이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아이들에게 공예를 가르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지인의 권유
미 동부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가정 보고 싶었던 곳이 나이아가라 폭포다.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거대함에 매료되었다. 내 생전에 과연 볼 수 있을까. 그저 꿈으로만 생각했다. 사촌들이 함께 여행하지는 말에 못 간다고 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공부를 못하게 되자 마음을 바꾸었다. 14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하는 부담감으로 불편했지만, 내 생에 다시
터널을 지나간다. 밝은 빛이 보이는 가 싶더니 몇 번의 터널을 지나간다. 2학기 시작을 앞두고 둘째 아들 학교가 있는 영주로 향하는 길이다. 자신이 간절히 원해서라기보다는 성적에 맞추고 모든 것을 고려해 대학을 선택하고 과를 선택했다. 1학기를 지낸 후에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확신 없는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