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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노블레스 오블리즈’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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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6.20 19: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명 배 호서대학교 초빙교수·전 주 브라질 대사

해마다 6.25가 오면 잊지 못할 두 장면이 떠오른다. 20년이 넘은 일인데도 엊그제 일처럼 뇌리에 선명하다.

필자가 1992년 주미대사관 근무시절 주한 미8군사령관을 지냈고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인해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우리 육사창설에 기여한 공로로 ‘육사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밴플리트 장군이 100세를 일기로 서거하여 알링턴 국립묘지 교회에서 거행된 영결예배에서 손자인 밴플리트 3세 (당시 공군대위)가 유족대표로서 행한 짧은 조사가 깊은 감동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밴플리트 장군은 나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이자, 나의 ‘베스트 후렌드’이자 ‘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늘 나와 함께할 것입니다>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자 밴플리트 대위의 아버지인 지미 밴플리트 중위가 폭격기 조종사로서 압록강 상공에서 작전수행 중 실종된 후 한 살 때부터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아들처럼’‘손자처럼’ ‘베스트 후렌드’로서 자랐던 밴 대위의 짧은 조사에서 한 가정이 상처가 얼마나 컸을 지,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지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같은 해 6.22 또한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 날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건립모금을 위해 기념주화의 주조행사가 워싱턴 재향군인회관에서 개최된 날이다.

미국측을 대표해서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스틸웰 장군이, 한국측을 대표해서 현홍주 주미대사가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총영사로 있던 필자가 대신 참석하여 상징적으로 첫 기념주화 2개를 주조하는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행사장에는 300여명의 미군 참전용사들과 가족과 재향군인회 관계인사들이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대기실과 행사장 사의의 커튼이 열리면서 50여 명의 상이용사들이 입장하는 순간 장내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맨 앞줄은 윌 체어가 늘어서 있고 뒤 두 줄은 팔·다리가 없고, 눈·코·귀를 잃고, 심지어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잃어 몸통만 남은 상이용사를 가족이 품에 않고 맨 앞에 서서 들어 오는 순간 스틸웰 장군을 비롯하여 대부분 참석자들이 손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행사 내내 그야말로 절제된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되는 감동적이고 숙연한 행사였다.

나는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하늘 같은 은혜를 입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있는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우리가 6.25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이면에는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잃고 사지가 잘려나가 몸통 하나에 의지하여 살아 온 미군 상이용사들과 가족의 피와 눈물과 숭고한 희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워싱톤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 기념동판에 새겨진 비문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쳐 싸운 우리의 아들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전사 3만7000, 부상 10만, 행방불명 8천의 고귀한 희생과 현 싯가 1억원 상당의 국민혈세를 투입하여 우리를 공산화 침략에서 구해 주었고, 전후복구와 경제개발을 도와줬다.

‘한강의 기적’은 실로 한,미 양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과 노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북한의 불법남침 당시 미국은 한국에 파병할 조약상의 의무도, 전략상의 이유도 없었다.

오로지 세계평화를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우리를 구해주었다. 당시 트루만 대통령의 영단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트루만 대통령의 은혜와 공적을 기리는 기념동상을 서울 중심에 세워드리는 것이 은혜를 아는 국민의 도리일 것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장성들의 아들 중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미국은 아버지가 지휘관으로 참전하면 아들이 그 전장의 최일선 소총부대에서 싸우는 것을 가문의 명예로 아는 ‘노블레스 오블리즈’정신이 전통으로 되어 있는 나라이다.

우리가 참으로 본받아야 할 점이다. 워커 8군사령관 부자·밴플리트·클라크 8군 사령관의 아들들이 전사했고, 알렌 덜레스(당시 존 덜레스 국무장관의 형) CIA 국장의 아들이 중상을 입고 평생을 정신박약자로 살았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지원병제의 나라인데도 리셉션장에 나온 사회 지도급 인사들 중에 상이군인이 적지 않으며 참석자들이 목례로서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국민개병제의 나라인데도 사회지도급 인사들 중 군 미필자가 적지 않다. 언제고 우리 나라 리셉션 장에서도 사회지도급 인사들 중 한 쪽 눈을 가리고, 목발을 짚은 상이용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국민들의 가슴이 뿌듯할 것이다.

‘G-7선진조국’의 꿈과 비젼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즈’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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