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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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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02 18:2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는다. 기억력을 믿는 건 아니지만 모든 번호를 기억에 의존해서 외우고 있다. 혹 잘 외워지지 않는 번호가 있어도 저장하지 않고 그냥 둔다.

외우지 못하는 것 하나 둘 때문에 저장하다 보면 나머지 번호도 저장해 두지 않는다고 장담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을 써서 외우다 보면 기억력도 좋아지는 등 의외로 불편하지 않은 걸 알게 된다.

디지털 문화 속에서 아날로그 시대를 고집하는 셈이지만 요즈음 디지털 치매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온 걸 보면 한편 생각이 많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을 말하며 보통의 치매와는 달리 기억력과 인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니 내가 속해 있는 아날로그 개념이 훨씬 생산적인 것 같다. 기계에 너무 의존한 탓이다.

저장 능력이 좋은 디지털기가 흔해지다 보니 두뇌를 사용하지 않게 되고 결국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뇌 질환이 아닌 정보 과다로 인해 뇌가 주변 정보를 밀어내는 현상이지만 이따금 극단적인 상태를 초래하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운전할 때도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므로 신경 쓸 일이 없다. 노래방에 가도 가사가 전부 화면에 뜨고 그것을 보며 노래를 하다 보니 가사를 제대로 외우는 곡 하나가 없다. 가족들의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도 기억했다가 챙겨주기보다는 스마트 폰에 저장하는 실태다 보니 두뇌를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편리한 기계는 문명인의 상징이되 무조건 빠져들다가는 기계의 노예이기를 자처하는 결과가 된다. 보지 않고 혼자 외워서 부르고 말할 수 있는 목록이 없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나 가계부와 일기장 등은 스스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간단한 것은 암산으로 하는 것도 권해봄직한 습관이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도 전화기보다는 메모장에 꼼꼼히 적어 두면서 활용할 동안 잃어버린 기억도 되살아나게 된다.

우리 몸의 기능은 활용하면서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혹사할 때는 탈이 생기지만 아예 쓰지 않으면 저절로 도태된다. 무리가 오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쓰면서 기능이 좋아지는 걸 안다면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는 요즈음의 세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기계의 도움을 벗어나 혼자 힘으로 뭔가를 해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리 어려서 치매라면 어지간히 연세가 든 분들이 걸리는 병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특별히 젊은 층에 많이 나타나는 걸 보면 편리한 기계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전화번호를 외우고 계산기 대신 암산을 한다 해도 메일을 보낼 경우는 예외다.

그보다 한 번 보낸 주소는 저장을 하지 않아도 창에 뜨는 게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원인이었다. 전화를 할 때도 한 두 번 누르면서 나머지 숫자가 뜨게 되니 정교한 기계가 오히려 두뇌 기능을 떨어뜨릴 게 걱정이다.

기계를 탓할 것도 아닌 게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가 더 문제다.

자칫 공황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소홀히 취급하다가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겠다. 편리한 기계는 가격도 그만큼 비쌀 텐데 선호하는 자체가 디지털 치매에 빠져드는 결과를 낳을 테니 기계가 우리를 조종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실제 전기 청소기를 돌려 주고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 주는 로봇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교한 기계를 만들어 쓰는 것도 모자라 기계를 작동해 주는 로봇까지 바라는 게 우리 모두의 심리라면 가히 기계의 천국에 도래한 셈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렇게 나가다가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할 의미와 존재가치를 잃고 기계만 남아 활개 치는 세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원시생활에서 문명사회로 이어질 동안 수많은 기계가 만들어지고 첨단과학을 자랑하는 시대로까지 발전한 지금, 오히려 그 때문에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인간 본연의 기능마저 손상된다면 그보다 유감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하기야 과학이 더욱 발전할 때의 일일 테지만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발전하는 추세를 보면 결코 먼 이야기는 아니리라, 우리 사는 양상도 조금은 달라져야 할 때다.

편리한 것에 너무 깊이 길들여져서 당장은 적응이 어려워도 나중을 생각하면 시급한 문제다.

즐겨 쓰는 스마트 폰이 고장이라도 나면 전화 한 통화도 할 수 없는 딱한 지경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기계란 내 힘으로 역부족인 절박한 상황에서 쓸 때 그 진가가 발휘되고 그로써만 편리한 기계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자존심을 높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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