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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비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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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23 18: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새벽 3 시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동이로 바가지로 퍼붓듯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으나 30 여 분만에 그쳤다.

물난리라도 날 것 같던 기세와는 달리 순하게 내린 편이었다. 예보도 약간은 어긋날 수 있음을 보는 것 같다.

어젯밤 내일 새벽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었으나 별반 신경은 쓰지 않는다. 이맘때는 일기예보를 듣는 게 일이거니와 나만의 습관적 예보 때문이다. 특별히 비가 많이 올 때는 수도꼭지에 물방울이 다닥다닥 맺혔었는데 며칠 동안 봐도 그런 기미는 없었다.

처음에는 물기를 머금은 듯 군데군데 축축하다가 나중에는 끓는 솥에 수증기 맺히듯 손잡이 전체가 물 범벅이 되면서 엄청난 비가 내리는 것이다. 가끔 인근의 바위산을 지나다가 돌 틈에 물이 흥건한 것을 보곤 하는데 그 때도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옛날 동화에 돌로 만든 미륵과 조각상이 눈물을 흘리면 큰 장마가 질 거라고 대피한다는 얘기도 그에 근거한다. 눈동자 부위는 유달리 깊이 파였고 그 자리에 물이 고여 흐르는 걸 보고 놀랐다는 게 이해가 된다.

장마철이 되면 주변이 일단 눅눅해진다. 늘 보는 책도 갈피가 처진다.

그 무렵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도 길게 늘어지고 머리를 손질해도 금방 웨이브가 풀린다. 주방에서 튀김요리를 하거나 김을 구워도 바삭하지가 않고 늘어지기 일쑤다. 밥알이 그릇에 들러붙지 않으면 그 또한 장마가 들 징후다. 건조한 날 밥알이 잘 들러붙는 것에 비해 습도 파악으로는 제법 적절한 방법이다.

속담에도 날씨를 나타내는 게 의외로 많다. 그 중에서도‘별은 비를 맞지 않는다’는 말은 들을수록 향수적이다. 비는커녕 흐리기만 해도 돌아가는 게 그 체질이고 보면 참 익살스럽다. 별이 총총 뜨는 한여름에는 결코 비가 오지 않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계절보다 별이 유독 많은 편이라 어지간하면 뜨는 법인데 얼마나 흐리고 비가 올 징조면 그럴까 라고 역 추적할 수 있다. 요즈음의 일기예보는 정확하다.

태풍이 몰려올 경우 그 속도를 감안해서 계산하는 식이라 보통 시간까지 맞아 떨어지고 정확성이 피부로 다가오곤 했으나 정작 중요할 때는 앞서처럼 어떤 느낌으로 하는 예보도 그에 못지않다는 게 더 새롭다. 나름대로 기후를 파악하는 일이 드문 것 또한 유감인 게, 예로부터 날씨에 관련된 속담이 부지기수라는 데서 경험이나 느낌으로 헤아린 일이 많았음을 생각한 것이다.

농사가 주업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 역시 일기예보에 의존하고 있으니 시대적 배경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날씨를 파악한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유익할 건 없다. 구름사진과 기압골 상태를 그려 넣은 지도에서 산출한 것보다 과학적인 건 없겠지만 우리 어릴 적 날씨가 궁금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본 일이 떠올라 좀은 아쉽다.

자연을 대할 기회가 줄면서 나름대로의 느낌과 감성이 메말라질 것 같고 스마트폰으로 금방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여건도 좋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 때도 일기예보가 없지는 않았으나 제한된 시간에만 방송을 한 까닭에 아무 때고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바쁘다 보면 또 하늘 한번 여유롭게 바라볼 일이 드물었으나 날씨가 궁금할 때는 습관적으로라도 볼 텐데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날씨야 원래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등 다양한 거지만 안 그래도 힘든 나날에 하늘을 보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조차 없으니 일상이 더욱 각박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외에 달무리가 끼고 햇무리가 지면 흐릴 거라든지 서쪽 놀에는 날씨가 맑을 거라는 건 단순한 날씨 파악의 구실이 아니어도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여운마저 맛깔스러운 느낌인데 날씨는 오히려 흐리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아울러 공해 때문에 별을 보거나 헤아리는 일이 드문 요즈음 그런 말을 듣는 것으로조차 삶이 윤택해진다 생각하면 사뭇 뿌듯하다.

저녁 해가 한동안 붉게 넘어가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도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당분간 비 올 걱정은 없다는 뜻이다.

예보는 착오가 생길 수 있으나 자연적인 현상은 대략 정해져 있고 그게 가끔 예보를 능가할 만치 정확한 결과로 나오는 셈이다.

예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태풍이 올 때 축대를 손보고 토사의 우려가 있는 야산을 보수하는 일은 그로써만 가능하다. 재난 방송을 보내고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내는 등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연에 의한 추론은 그보다 비과학적이고 막연해도 하늘을 보고 날씨를 추측하는 건 훨씬 여유롭다. 예상이 맞고 안 맞는 그보다는 날씨가 궁금하다고 하늘 한번 숲 한번 더 바라보며 더위를 잊는 운치를 말하는 것이다.

별은 비를 맞지 않는다는 표현도 아름답거니와 그보다 확실한 예보는 또 드물 거라는 점까지도 생각하면서.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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