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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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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30 19: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엊그제 모임에 나갔다가 원목 조각품 전시장에 들렀습니다. 곳곳에 오래 묵은 나무를 베어 다듬은 장식품이 꽤나 많더군요.

특별히 통짜로 다듬은 원목 탁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둥글넓적한 판에 새겨진 나이테가 얼마나 고풍스러운지 몰랐습니다.

잔물결에 돌을 던졌을 때의 무늬와 흡사했고 방사선처럼 뻗어나간 것은 거미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뜰에 내려서니 나무토막을 잘라 만든 의자가 곳곳에 늘어서 있습니다. 나이테는 나무의 상징이되 그 모양이 천태만상이라는 게 또한 인상적이었죠.

똑같이 둥근 토막에서 파생된 무늬였건만 뉘앙스는 가지각색입니다. 우리의 표정이 다양한 것처럼 그 많은 나이테가 하나도 같은 게 없으니 우리처럼 살아온 자취는 각자 다른 걸까요.

나이테는 나무의 이력입니다. 구부러진 자리마다 태풍과 비바람에 시달려 온 곡절이 묻어납니다. 나무 하면 나이테가 떠오르는 것도 그 삶의 애환이 농축된 까닭입니다.

켜켜로 뻗은 원형의 고리마다 한 점 씨앗에서 발원된 나무의 일생이 펼쳐지곤 했지요. 떡잎이 나고 가지를 늘려 잎을 새겨온 과정을 그려 보다가 얼핏 나이테 없는 나무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해 캘리포니아를 여행했을 때 본 야자수가 생각난 것입니다.

곳곳에 가로수처럼 흔한데 나이테가 없다고 합니다. 일 년 내 덥기만 해서 쑥쑥 잘 크기는 해도 어쩐지 생소하군요. 그늘은 물론 경관도 좋은데 나이테가 없다니 나무에서 나이테를 빼면 뭐가 남을지 착잡한 기분입니다.

다만 1년을 자라도 나이테가 생기는 나무에 비해 키는 커서 하늘을 찌를 듯 장해도 연륜을 알 수 없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러나 생각하니 속단이었습니다. 나이테가 없는 대신 가지마다 수많은 비늘줄기가 덮여 있고 현지 사람들은 그게 나이테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의 소나무 역시 비늘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보면 딱히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나 훨씬 두껍고 질긴 것은 나이테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비늘은 또 쉬 벗겨지는 것에 비해 겹겹으로 포개진 캘리포니아 야자수의 껍질은 질겨 보였거든요.

더 놀라운 점은 야자수 종류는 어디서 자라든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파인애플을 먹은 뒤 그 싹을 잘라 키워 봐도 캘리포니아의 야자수처럼 두꺼운 껍질뿐이었습니다.

기후가 맞지 않아 그런지 잘 크지도 않거니와 큰다 해도 흔히 보는 물결무늬 나이테는 생기지 못했을 겁니다.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 중에 변덕스러운 기후가 우선이라면 사철이 뚜렷한 온대 지방에 심어도 생기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그보다 겨울에 테가 그어지는데 그 겨울이 없으니 표시가 나지 못한다는 게 맞을 표현이겠죠. 내가 심었던 파인애플처럼 나이테는커녕 비늘 껍질만 볼 수 있어도 다행입니다.

나이테도 없는 변변치 못한 나무라고 했다가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구분하는 테가 없다 뿐이지 원형의 연륜은 계속 쌓였을 테니까요.

우리 살 동안의 나이테 또한 그렇게 형성되어야겠지요. 살면서 하나 둘 늘어가던 나이테가 어느 날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달라지고 더 이상 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연륜을 상징하는 나이테 하나 없이 검버섯과 주름만 늘어날 때는 한번쯤 돌아봐야겠지요.

우리 보통 알고 있는, 속으로 생기는 나이테와 겉으로 보이는 검버섯 같은 비늘껍질 등을 생각한 것입니다.

속 나이는 그대로인 채 검버섯이나 주름만 늘어간다면 키가 크고 수많은 비늘껍질에 둘러싸인들 나이테 없는 나무와 다를 게 없습니다. 단순히 폄하하는 건 아니고 야자수와 파인애플은 또 나무의 생태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 연륜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나이테가 원칙적으로 사철의 기후가 뚜렷한 데서만 생기는 거라면 여건이 바뀔 때는 지금까지 새겨 온 나이테와 격이 달라질 수 있음도 헤아려야겠지요.

원목 탁자의 나이테가 볼수록 특이합니다. 유리에 덮인 무늬는 흐를 듯 유연한데 떠받치고 있는 나무토막에는 검버섯이 피고 이끼가 잔뜩 슬었습니다. 톱으로 켜기 전에는 모르겠더니 막상 잘라 낸 단면은 두 가지 모습입니다.

우리도 안팎으로 나이가 있다면 적절한 조화로써만 차원을 논하게 되겠지요. 묘목일 때는 검버섯 하나 없이 매끈했던 나무에 비늘껍질이 생기듯 순수했던 날들에 곡절이 많아지면서 안팎으로 연륜을 쌓는다고 보면 틀림없을 거예요.

일단은 마음 속의 나이테가 생긴 뒤 거무튀튀한 껍질에 뒤덮이는 거죠. 웬만치 나이테가 새겨진 후 덧붙이게 될 삶의 본질이 오늘따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흔히 보는 나이테의, 사포로 다듬은 듯 정연한 문양과 겉으로 나타난 투박스러운 무늬에서 특유의 어울림도 생각합니다.

투박한 겉껍질과 물결무늬 나이테가 천양지차인 중에도 유독 뛰어난 데서 세상의 양면성을 헤아린 것입니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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