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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는 ‘불(佛) 도량’재소자의 ‘희망전도사’

황우종 대전교도소 교정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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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8.05 17:18
  • 기자명 By. 강재규 기자
▲ 황우종 대전교도소 교정협의회장

-사재 털어 수도 없이 수형자와 ‘어려운 가족’ 지원 활동 30년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찾을 것…후회없는 삶 살아가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정신 중요”…교화시설 운영하는게 소망

누구나 한번쯤 마음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아 사회에 봉사하며 선행을 베풀기는 쉽다. 하지만 이를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 30년이 넘도록, 반평생을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 교도소에서 봉사하면서 재소자들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도록 도와온 사람이 있다. 스님이다. 그는 이곳 교도소 봉사활동을 자신의 구도생활처럼 여긴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 222번지 ‘백운사’ 주지 황우종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대전교도소 교정위원이자 교정협의회장인 황우종(법명 法明) 스님(78)에게 있어서 교도소는 불도량(불교에서 불도를 닦는 신성한 곳) 그 이상이다. 그만큼 자신의 구도(求道)와 무관치 않음은 물론 절을 제외하고는 삶의 거의 전부가 되다시피한 곳이다. 세속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는 모든게 번잡하기만 할 것같은 일에 푹 빠져 사는 스님이 아닐 수 없다. 수형자들에게는 영원한 희망전도사 스님이다.

법명 스님에게 대전교도소는 구석 구석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그곳을 거쳐갔거나 현재 남아 있는 수형자들에게는 그 자신이 가장 친근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새로운 삶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동인이 되는 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그가 한결같이 이곳 대전교도소를 찾아 법회를 열어주며,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법어를 전하고, 또 때로는 가장 소외받고 눈총받는 이들에게 가장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가 위로하고 격려해주며, 때로는 경제적 물질적 지원을 해왔다.

지난 12일 대전교도소 본관 대회의장에서 기자를 만난 법명 스님은 그가 교도소를 찾는 이유를 간단히 이렇게 설명했다.

“수형자 중에서는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내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변함없이 찾아올 여러분들이 그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앞으로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라고 했지요.”

정말 그의 마음이 그렇다. 자신이 소유한 것이 뭐 그리 많이 있을까마는 무엇하나 이들 수형자들에게 주지 못해 안달이다.

그가 처음 교정봉사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지난 1981년 무렵이다. 현재 자신이 주지로 있는 옥천군 청산면 백운사로 자리를 옮겨갔을 때쯤이다. 당시 송춘희 가수로 잘 알려진 백련화 보살과 알고 지내었는데, 그가 하루는 ‘한일불교대회를 일본서 하는데 떡 한 가마를 대전교도소로 보내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교정위원이 된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수형자들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알겠소. 그 정도는 해주겠소’ 하고 승락하며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수형자가 있다.

자살시도를 했던, 이제 갓 스물아홉 된 젊은 청춘의 수형자였는데, 그가 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로 이송돼와 거의 자포자기하던 때였던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10년형 안팎의 같은 방의 수형자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못해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법명 스님이 그 때 그를 만나 상담해주며 새로운 희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자 그의 생활이 어느새 바뀌었다.

그러고는 매주 법회가 열리는 날 법명 스님을 기다리는 것이 한 주의 일과가 되다시피 했단다.

“진정 눈물 흘리며 참회하고, 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몸이 아파도 와야 하고, 절에 다른 일이 있어도 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이렇게 단언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변함없이 찾아올테니 너희도 보답하는 뜻에서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거라.”

물론 수형자들이 교도소 생활을 통해 모두가 완벽하게 교화되고 순화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수형자들을 교도소에서 교화해서 형기를 다했을 때 내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생활대책을 세워주어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법명 스님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는 비록 작지만 소중한 꿈이 새로 생겼다. 진정한 교정봉사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사업인 셈이다. 꼭 해보고 싶은 사업이다.

그 방법은 이런 거다. 조만간 방 20~30개 가량되는 합숙소를 만들어 정말 오가기 어려운 출소자들에게 무상으로 주고, 또 먹고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정말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에겐 1년간 무상으로 생활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생활 자금을 모으고, 1년 쯤 후에는 독립하고 또 다른 출소자 중에서 들어와 신세지으며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정부 교정기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민간차원에서 해주고 싶은 것이다.

사실 법명 스님이 오늘의 대전교도소 교정협의회를 이끌며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된데는 그의 열성적인 헌신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임을 교정계에서는 왠만큼 다 안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2~3년전만 해도 근 10년 가까이 교정협의회가 제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엉터리였다. 교정기관에 봉사하네 하고 이름만 걸어놓을 뿐 실제 활동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보니 협의회 운영은 엉망이었다. 검찰이나 경찰 소속 봉사단체라면 그렇게까지 허울뿐인 단체로 전락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자괴감에 법명 스님은 괜스레 속이 상했다. 이러려면 처음부터 교정봉사한다고 나서지를 말것이지 하며 교정위원들에게 쓴소리도 했다. 물론 지금도 전체 130여명의 교정위원들 중에 제대로 활동하는 이는 30명 안팎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아주 나아졌다.

법명 스님의 헌신적인 활동을 보고 같은 교정협의회 소속 교정위원들조차 “스님 밖에 협의회장을 맡으실 분은 없으니 아예 종신회장을 하시지요” 한단다.

그가 생각하는 봉사단체 회원이라며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내것이 아깝다고 여기면 못하는 것이 봉사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법명 스님은 다른 회원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 출연(出捐)이 월등히 많다.

지난 1981년 백운사 주지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면서 평소 수용자 교정교화에 뜻을 두고 생활해오면서 현재까지 교정협의회 화합조성에 기여한 것은 물론, 수형자 취업알선, 종교집회, 수용생활지원, 고충상담, 자매결연, 자살우려자 상담, 불우수용자 가족 돕기, 교화기자재 기증 및 수용자 복지와 건장증진 등 정말 다방면에서 봉사해오고 있다.

지난 1995년 부터는 수용자 1인 1종교 갖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 불교 포교활동을 함으로써 1천여명의 수용자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를 누우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등 수용자 심성순화에 크게 기여한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97년 2월부터는 수용자 교정교화의 출발점은 신앙심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는 신념을 갖고 그간 60여차례, 1만2000여명의 수용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를 주관하고 음식물 2000여만원 상당을 지원, 수용자들이 종교적 믿음을 통해 안정적인 수용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1월 무렵이다. 한 특별사면대상자의 부모가 장애인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출소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서는 벌금 95만원을 대신 납부해주고, 그해 9월에는 형편이 어려운 노력 수형자 벌금 30만원을 납부해줌으로써 건전한 사회복귀에 도움을 준 것이다.

법명 스님은 백운사 주지와 함께 경남 창녕 법성사 주지도 같이 맡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는 교정협의회의 활동을 거의 혼자 도맡아 해오다 시피 했지만 앞으로는 교정위원간 교류를 활성화해 말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협의회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 그가 꿈꾸는 일이 있다. 이러한 교정기관으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가 진정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지는 것, 그것이다.

수용자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는 억울하다고만 말한다는 것이다.

돈과 빽이 없고, 부모를 잘 못만나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모든게 나로 인해 이뤄졌으니 내가 참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잘못된 인식을 갖는 자체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다. 우리 사회가 자꾸 그렇게 가고 있어 문제라고 그는 진단한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이야기 하는 ‘스스로 십자가를 져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법명 스님이 인터뷰 말미에 저 영국의 유명한 처칠 수상에 관련해 들려주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지 싶다.

즉, 처칠의 아버지는 처칠이 어렸을 적부터 곧잘 정치모임에 데리고 다니면서 “언제나 말조심하고 행동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남과 소통하는 정신을 배우거라”라고 가르치며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의해 좌우되지 말라고 깨우쳐왔다는 것이다.

최근의 크고 작은 각종 비리와 흉포화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는 것도 사실 이처럼 남을 배려하지 못한 채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충동돼 사는 사회가 되다보니 그런게 아닌가 하는 진단을 범명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하게도 돼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서울/강재규기자 kangjg34@dailycc.net

●황우종 스님은 누구?

▲인천 강화출생(78) ▲서울 문화대학 승가학교 수료 ▲대한불교 관음종 백운사 주지 ▲대전교정보호사업 마하회장 ▲대전교도소 교정위원 ▲대전교도소교정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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