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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못낸 여관비 팔순 노인 6만원 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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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1.12 19:02
  • 기자명 By. 백대현 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3시 30분께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충남 논산시 반월동에 있는 논산경찰서 논산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한다는 이모(82) 할아버지는 “40년 전 빚이 있다. 그분을 찾아 꼭 빚을 갚아야 한다”며 근무 중이던 송태의 경사의 손을 꼭 잡았다.

이 할아버지는 40여 년 전 논산의 한 여관에서 하숙하며 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갑자기 공장에 불이 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고, 이 할아버지는 당시 밀린 여관비 2개월치 6만원을 내지 못하고 논산을 떠나야만 했다.

돈을 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 이 할아버지는 여관비를 갚으려고 40년만에 다시 논산을 찾았지만 이미 여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동사무소도 가봤지만, 누구도 여관을 알지 못했다.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논산지구대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여관 인근에 극장이 있었다는 것과 여관 주인의 손자가 초등학생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여관 주인의 이름조차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송 경사는 난감했지만, 이 할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40년전 여관비라는 말을 듣고 당시 여관 주인을 찾아 나섰다.

마을 이장들을 만나 이 할아버지의 사연을 얘기했지만 여관 주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송 경사는 여관 주인 찾기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꼭 찾아달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길 닷새째.

논산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장이 당시 여관 주인의 손자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상인회장의 도움으로 손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여관 주인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할아버지는 손자라도 만나 빚을 갚고 싶다고 했고, 송 경사는 어렵사리 알아낸 집 주소를 할아버지에게 건냈다.

며칠 뒤 송 경사는 할아버지로부터 여관 주인의 손자를 만나 빚진 돈에 이자까지 얹어서 갚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송 경사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40년전 여관비를 갚기 위해 병마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한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논산/백대현기자 no454@dailyc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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