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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당선자와 당선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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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8.01.22 18: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이 세상에 비슷한 사람 많아도 똑같은 사람 없는 것처럼, 국어에 뜻이 유사한 유의어가 많아도 뜻이 완전히 같은 동의어란 없다는 것을 머리 속으로 이해하면서도 ‘대통령당선자’라는 단어와 ‘대통령당선인’이라는 단어를 구별해 쓰지 않아왔다. 잘못이다. 아직 두 단어를 구별해 쓰지 않은 언론이 꽤 있는데 잘못이다.
2003년에 제정된 현행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을 부르는 말은 ‘대통령당선인’이다.
‘대통령당선자’가 아니다. ‘대통령’ 다음에 한 칸을 띄어서 쓰는 ‘대통령 당선인’도 옳지 않다. 어문규범이란 한편으로 중요하지만, 학교문법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참으로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문규범은 언어생활의 질서를 위해 국가가 정한 하나의 표준인데 때로 그 표준만을 강조하다 보면 말이 가진 힘이나 단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돌아볼 여유도, 글과 말을 통해 생각을 깊게 할 넉넉함도 잃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준은 지키는 것이 좋은 때가 많다.
더구나 국민이 새로 뽑은 다음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여 일하기 시작한 지금은 ‘대통령당선인’이라는 용어 하나라도 바르게 쓰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만은 국민에게 나라 빚을 남겨 국민의 주름이 깊어지지 않게 지켜보자는 의미에서라도 그렇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왜 ‘당선자’ 아닌 ‘당선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자(者)’는 사람을 좀 낮잡아 이를 때 주로 쓰기 때문에 ‘당선자’를 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낯 선 자가 대문 앞에 서성인다”나 “하인이 안으로 들어간 얼마 후 신분이 뚜렷치 않은 서울서 온 지 서방인가 하는 자가 육각등 옆에 나타났다”(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예문을 보면 ‘자’가 가진 가치평가적 의미가 상당히 낮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인(人)’에는 그런 낮은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국어가 가진 전통적인 어문규범을 충실히 따르자면 ‘대통령당선인 이명박’이 옳고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은 옳지 않은 표현이다.
직위나 직책을 성명 앞에 붙이면 그 인물이 중심에 놓이지만 직위나 직책을 성명 뒤에 붙이면 직위나 직책이 중심이 되어 해당 인물을 과잉공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 중 이 어문규범을 잘 지켰던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그는 연설의 첫머리를 “나 대통령 이승만은……”이라고 늘 시작하고는 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 언어감각이 달라지니 어문규범도 어느 정도는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전통적인 어문규범을 충실히 따라 “대통령당선인 이명박이 2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회의실에서 경제연구기관장들을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라고 보도하면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대우하는 듯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2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회의실에서 경제연구기관장들을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라고 하여도 대통령을 과잉공대 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언론은 현재 대체로 후자를 선택하는 편인데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본인을 지칭할 때 순서를 어떻게 하는가는 조금 궁금하다.
우리의 대통령당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미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미국은 대통령당선인을 ‘president elect’라 부른다.
선거가 있는 해의 11월에 선거인단이 투표를 하여 12월에 대통령당선인이 결정되면 인수팀을 결성하여 인수준비를 한다.
투표에서부터 그 다음 해 1월20일 정오에 당선인이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3개월 동안을 물러나는 대통령의 진짜 레임 덕 기간이라고들 말하며 이 기간을 경계한다. 정치와 행정의 공백상태가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박 금 자
뉴시스 편집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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