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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

“사랑이란 놓아주는 것 이라고 했다. 자기의 틀을 정해놓고 가두려 하지 말고 알맞는 거리로 놓아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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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2.15 17: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덕 주 담쟁이 시민학교장

가끔 등산을 같이하는 친한 친구가 첫 손자를 보았다. 아들의 결혼이 늦어 느지막하게 손자를 얻었으니 이 친구 언제나 싱글벙글 이다.

이제 손자가 첫돌이 되어 방긋방긋 웃으며 걷기시작 했다고 자랑을 시작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늘 마무리는 손자 이야기로 돌아가고 앉았다하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손자자랑이 끝이 없다.

아들을 닮았으면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할 거라느니, 자기를 닮아 인물도 훤하다느니, 순둥이라 잠도 잘 자고 투정 한 번 안 부린다는 등등.

그 때마다 싫은 내색도 못하고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자 자랑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어 이젠 ‘손주 자랑 5분에 만 원씩’ 내야 된다는 모임 규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손주 사랑이 넘치는 이 할아버지 세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들은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게 온몸 바쳐 일한 세대로 정작 자신들의 아들딸을 키우는 일에선 철저히 소외됐다는 사실이다.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서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귀가했던 아빠들이다. 그만큼 사랑하는 아이들과 말할 시간도 놀 시간도 없었던 불행한 세대로 육아는 서툴기 짝이 없다.

며칠 전에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몇 제자만 남아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중에 중학교 교사로 있는 제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좋은 할아버지이신 거죠? 마냥 예뻐만 하는 할아버지는 손자손녀에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그 말과 더불어 할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이야기를 했다.

중학생이 되면 어느 정도 독립된 인격을 갖춘 학생으로 성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반의 한 남학생은 모든 대화에서 “우리 할아버지가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지나친 사랑 때문이지 싶단다. “우리손자! 우리손자!”하며 키운 탓에 아직도 부모와 같이 생활하는 날보다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그 학생은 일탈된 행동이 많아 선생님들이 지도에 애를 먹는다고도 했다. 지나친 할아버지 사랑이 문제인 듯싶다고.

또 다른 제자는 자신의 부모님은 손자손녀의 교육에 관심도가 굉장히 높다고 했다. 해마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해주시고 이것저것 물으시며 취직 걱정을 하시니 정작 그런 관심을 받는 손자 손녀는 너무 큰 심적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좋은 것이 아닌 듯 했다. 지나친 관심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정해진 울타리에 가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서로 예의를 지켜야 원만한 고부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지나친 관심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감을 두며 잘 자라주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주는 것이 좋은 할아버지상이 아닐까?

손주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기대로 부담을 주거나 또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버릇없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손주도 안 된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이해해 주고 사랑으로 바르게 교육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손자손녀가 힘들어할 때는 엄마 아빠의 조급한 욕심을 떠나 할아버지는 한 발 뒤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는 그런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부드러움 속에서 규칙을 배우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워 학교나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모범적인 할아버지면 좋겠다.

사랑이란 놓아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의 틀을 정해놓고 가두려 하지 말고 알맞은 거리로 놓아주는 사랑,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안내자가 되어주는 사랑, 이렇게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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