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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정유왜란과 한의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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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8.02.03 19: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4백여 년 전(1592·1598) 임진 정유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조선침략은 역사상 우리의 기억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몸서리 쳐지는 전쟁이었다.

조선이 건국 된지 꼭 200년 만에 일어난 전쟁이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1585년경부터 노골적으로 대륙침략의 내심을 들어내었고, 마침내 1587년 규슈 정벌을 끝내고 전국시대를 통일한 다음, 조선침략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나갔고, 조선 침략의 이유는 통일 후 무사들(사무라이, 번주들)의 여력과 불만을 국외로 분출시켜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신의 권좌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당한 이유를 내걸어 조선침략을 감행했던 것이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자 조선정부는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 허성을 종사관으로 한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다.

그 결과 1591년 이들이 가지고온 답서는 무례하게도 정명가도(征明假道)이었다. 즉 명나라를 칠 터이니 길을 비켜 달라는 것 이었다.

이에 대하여 조선의 조정은 어떻게 대응 했는가?

우선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야욕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보고를 했고, 조정은 뇌화부동 양분되어 대비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13일, 700여 군함과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불과 20여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은 폐허가 되었고, 저자의 거리에는 쌓인 시신이 부패되어 악취가 코를 자르고 핏물은 발목까지 흘렀다고 전해온다.

농토는 절감하고 굶주린 백성은 아비규환 거리를 방황했고, 사람이 사람을 해하여 먹는 일까지 있었다 한다.
문화재는 분탕 약탈되었고, 조선의 탈곡기도 이때 전하여 저 일본에서 새로운 농기로 등장했다. 문화인, 세공 (細工), 도공, 바느질, 요리 잘하는 사람들은 납치 되어 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진상되었다. 무고한 백성이 끌려가 오사카 노예시장에서 유럽으로 팔려갔다.

의성 허준의 등장과 동의보감 출간

전쟁 중에는 전염병이 창궐하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민중이 기근에 시달리고 역병으로 죽어 갔다. 이에 대한 국가적 대비책이 절실했다.

1596년 선조는 허준 등 내의원 의원들에게 민중을 위한 의서 출판을 명령했다. 이 사업은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허준은 이를 이어서 1598년부터 독자적으로 14년간의 각고 끝에 완성시켰다. 1613년 첫 출간 되었다 중국의 북의, 남의에 비하여 손색이 없어 그 이름을 당당하게 동의보감이라 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조선의 한약(고약)과 한약도구, 동인이 일본에 전해 진 것도 임진정유왜란 때 육조(六助)가 배워가지고 가서 일본에 보급한 것이다.

동의보감의 특색은 기존의 중국 의서에 비하여 편집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출간 되면서 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앞 다투어 간행 하였고, 20C에 들어서는 독일이 번역본을 내기도 하였고 영역본도 나왔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4백여 년간 읽히어져 내려온 금과옥조와 같은 세계적 의서인 것이다.

약물은 90%가 향약(토종)이었고 그 당시 중국의 약을 당약 이라하였으며 너무나 고가여서 일반 민중은 감히 병이 들어도 약을 쓸 엄두도 못 내였다. 동의보감에 많은 단방 약을 수록해 놓아서 일반 서민들도 쉽게 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또 의서를 한글 언해본으로 만들어 백성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허준의 민중을 위한, 소외계층을 위한 의학정신 이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오늘에 상기 시킨 것은 지난 역사를 통하여 성웅 이순신장군의 구국정신, 허준의 민중의학정신, 이율곡 선현의 예지적 애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생명 화하여 오늘의 삶을 영위하고 내일 삶을 설계하기 위함이다.

조치원 동양한의원/이풍용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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