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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불행…서글픈 ‘만찬’

첩첩산중의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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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1.21 17: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가족이 함께 모여 김치찌개를 맛나게 먹는다.

아들은 흥에 겨워 소주 한 잔을 청하고, 아버지와 동생은 맞장구를 친다.

분위기는 어머니가 정성 들여 끓인 찌개만큼 따뜻하다.

만찬(晩餐). 저녁 식사를 위해 차린 음식은 소담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꿈과 행복이 스며 있다.

영화 ‘만찬’은 그런 따뜻했던 음식들이 하나 둘 식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산산이 무너져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송곳 같은 직구처럼 영화는 빠르고 날카롭다.

잇따르는 명예퇴직,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IMF 이후 불거진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을 ‘만찬’은 정밀화처럼 세밀히 보여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남 1녀를 키운 노부부. 은퇴하고 나서 넉넉한 자금을 축적하지 못해 늘 쪼들린 생활을 한다.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큰아들 인철(정의갑)은 명예퇴직을 당하고, 막내아들 인호(전광진)는 대리운전을 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여념이 없다.

딸 경진(이은주)은 남자를 잘못 만나 미혼모로 살아간다.

한동안 희망과 담을 치면서 살아가던 가족. 그러나 절망은 너무나 쉽게 담을 넘어 스멀스멀 다가온다.

인호는 대리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인철은 당황한 인호를 안심시키고 나서 시체를 유기한다.

첩첩산중의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김동현 감독의 연출이 독하다.

‘상어’(2005), ‘처음 만난 사람들’(2007)을 연출한 김 감독은 리얼리즘적인 시각으로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한다.

생일에 처음으로 햄버거를 먹어볼 정도로 살뜰하게 살아온 어머니는 늘 생활비가 빠듯하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아들들은 자꾸만 삶이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한다. 현실에 뿌리박은 대사들은 끈적끈적하다.

“애가 돈 먹는 하마”라고 말하며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인호 부부, “그냥 사는 게 힘드니까”라며 서로를 위로하는 인철 부부, “왜 나를 피해”라며 바람난 직장 상사에 따져 묻는 경진 등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영화의 불편한 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불행이 기어이 등장인물의 숨통마저 끊어 놓는다는 점이다.

약간의 희망이나마 심어놓는다면 다소 불편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겠지만, 감독은 그런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단호하다. 흰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불행이 가족을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나 강렬하다.

잘 조율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노부부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조미료 없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정극 연기를 한 정의갑과 전광진, 이은주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다만, 경진의 이야기가 다소 과장돼 극적인 균형이 다소 떨어지는 아쉬움은 있다. ‘만찬’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다.

23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25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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