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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붙여보자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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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8.03.04 18: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이제 본적을 적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차 번호판도 도이름을 빼버렸다. 타도에 가서 딱지를 떼더라도 지역 텃세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에는 기업 채용시 출신학교를 빼자는 것이다. 간단하다.

당장이라도 공기업부터 시행할 수 있다.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클 수도 있다. 신도 부러워한다는 공기업에 출신학교를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효과가 좋고 어느 정도 인센티브만 준다면 사기업도 동참하지 않겠는가.

사회에 진입하는 학생들에게 계급장 떼고 붙여보자는 것이다. 학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실력을 맘껏 발휘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제는 창의성이 존중되는 시대다. 창의성은 학력과의 관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른바 중하위권 대학은 아예 서류심사부터 제외시키는 지금의 기업채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사에 국장급으로 있는 친구의 말로는 일류대 출신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만하기 때문이다. 일반화된 말은 아니겠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축 처진 어깨들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 2월에는 졸업식이 줄을 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밀가루와 날계란이 날아다니는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졸업으로 마무리되었다. 딱한 것이 이구백 또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대학 졸업자들이다. 윗줄을 잡은 축들은 그래도 나아보이지만 아랫줄을 잡고 교문을 나서는 저 축 처진 어깨들을 어찌할 것인가. 대학까지 2억 3천만원이 든다는 현실에서 등골이 빠져버린 늙은 부모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내가 만난 그 젊은이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S는 아니더라도 K나 Y대학 정도는 갈 실력이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수도권 주변의 대학을 4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평균학점도 A+에 가까웠다. 졸업하고 고향에도 못가고 후배 자취방에 얹혀살더니 결국 고시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학점은 물론이고 토플점수나 어학연수, 자격증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 취업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그의 하소연은 떨어지는 이유나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 선배는 기업의 인사과에서 직원 채용의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고 했다. 수십 명 뽑는데 수천 장의 서류가 쌓인다는 것이다. 언제 그 서류를 다 보겠냐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서류에서 대학을 볼 수밖에 없다는 고백을 했다. 그 젊은이에게 차마 그런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의 반상도 아닌데 졸업장에 박힌 대학명이 신분을 규정하는 현실에서 기업은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번호표 하나가 바꿔놓은 놀라운 변화

오직 윗줄을 잡아야 하는 현실에서 잃어버린 것이 사교육비라는 돈만은 아닐 것이다. 잠재된 능력을 찾아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초등시절부터 영수에 매달려 청춘을 바친 젊은이들의 생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것인가. 서열화된 사회구조, 대학구조만 아니라면 그 가능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누비는 한비야 같은 수많은 인재를 스스로 도태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학벌위주의 채용관행이 사교육비의 원인으로 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남아있는 한 어떤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관행부터 깨야 한다. 기업 채용시 출신 대학명을 따지지 않으면 된다!? 참 황당한 해답 같지만 시도할만한 가치는 있다. 대학졸업장도 지금의 졸업장과 일반화된 졸업자격증으로 이원화하면 된다. 채용할 때 일반화된 자격증을 받으면 된다. 기업에서 남의 연봉을 알려는 것만으로 해고 사유가 된다고 들었다. 기준만 세우면 비밀유지가 어려울 것도 없다.

시작만으로도 대학의 서열화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이에 따른 심리적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이 제도가 일반화되면 학적으로 조장된 패거리 문화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공평하게 출발하고 능력에 따라 대접받는 것, 이것이 민주화가 아닌가? 작은 변화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례는 많다. 시장바닥처럼 혼잡했던 은행창구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해진 충격적인 장면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번호표 뽑는 기계 하나로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우진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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