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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살아서 어른들을 꾸짖어 다오

“얘들아, 제발 엄마와 친구와 선생님을 그리며 버텨다오. 끈질긴 생명력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아서 돌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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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4.23 18: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송 양 헌 목원대 생의약화학과 교수

아이들아, 우리 아이들아, 들리니. 목 놓아 네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니. 이젠 쉬고 갈라져, 목이 메어서 소리도 나오지 않지만 익숙한 네 귀에는 또렷이 들릴 텐데. 들리면 대답해다오. 대답 좀 해다오.

침몰 소식을 들은 뒤 내내도록 서성대고 있다. 아, 이래도 되나.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현재, 사망자 139명 실종자 163명. 그 모질다는 목숨 줄이 어찌 이렇게도 쉽게 우리 손에서 휘청 빠져 나가 버린단 말인가. 이런 무참함, 어이없는 분노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먹먹한 슬픔이 밀려온다.

이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거니. 희망을 접어야 하는 거니. 살아 있단다, 살아서 돌아 왔단다, 이 말을 되뇌고 있단다. 육당 최남선은, 말에는 ‘언령관념(언령觀念)’이라는 게 있어서 그렇게 된다고 말하면 그렇게 되어지는 신령스러운 힘이 있단다. 그의 말에 기대어, 살아 있단다, 되뇌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구나.

어른이란 사실만으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대형 사고를 번번이 일으키는 나라밖에 만들지 못했는가. 숱하게 사고를 겪고도 배우지 못해, 채 벙글지 못한 꽃봉오리 같고, 여리디여린 새잎 같은 너희들이 마음 놓고 나들이 한번 할 수 없는 세상밖에 만들지 못했는가.

어른이란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선실이 더 안전하니 그대로 있으라는 선원 아저씨의 말을 너희는 교과서로 듣고 믿었을 게다. 그런데 그 어른들은 위험에 처한 모두를 팽개친 채 자기들의 목숨 줄만 챙겨서 도망쳤다. 그것도 가장 먼저. 배와 함께 목숨을 같이 한다는 뱃사람의 전통은 없었다. 승객들 구조가 우선이라는 매뉴얼도 까맣게 잊었다. 배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어른들이 그것을 승객 피신에 활용하지 않고 먼저 도망치는 데 써먹었다. 그 교활함이라니, 그 비겁함이라니….

마지막까지 구명조끼를 나눠주다 목숨을 잃은 박지영 씨. 그녀는 바로 손 위 언니, 스물세 살 꽃다운 처녀였다. 이 땅의 어른이라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헬기가 뜨고 어선이 몰려왔는데도 탈출 명령은 발령되지 않았다. 구조 관련 기관과 구조원이 한데 엉킨 현장은 거의 장바닥 수준이었다. 탑승객 명단은 물론 구조된 인원,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엇갈렸다. 신속히 대응할 구난체계도 입체구조 작전도 없었다. “승객들 명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물살이 너무 세서…” 구차한 변명만 바다에 둥둥 떠다닌다. 이게 이 땅 어른들의 수준이다.

거짓 민간 잠수사 오보 소동을 낸 방송, 기념촬영을 한 정부 관료, 어쭙잖은 방문으로 욕을 듣는 정치인들은 어떤가. 이게 이 땅 어른들의 허망한 속내들이다.

너희들이 탄 세월호는 출발해선 안 되는 배였단다. 출항 전 제출한 안전점검 보고서부터 엉터리였다. 여객 명부는 아예 ‘없음’이다. 그러니 승객 수도 모른다. 화물 적재량도 확 줄여 기록했다. 없다고 한 컨테이너는 앞 갑판에만 10여개가 있었던 것으로 침몰 당시 영상으로 확인됐다. 실은 화물은 제대로 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세월호는 출발했다. 확인도 없이 엉터리 보고서든 뭐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도장 꽝꽝 찍은 어른들 때문이다.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리조트의 강당에서 눈더미에 무너져 10명의 젊음을 잃은 게 겨우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때 어른들은 무어라 했는가. 그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부끄럽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었다. 그런데 또…. 어른들이 이렇다.

“사랑해” “괜찮아”하고 외려 우릴 달래는 착한 아이들이 마음 놓고 여행 한번 다닐 수 없는 나라라면 어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뛰어온 것일까.

이 땅의 어른들이 빚은 이 참담한 비극에 한없는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 땅 어른들 모두 고개를 처박고 다니라 해도 감수할 터이니, 그러니 얘들아, 제발 엄마와 친구와 선생님을 그리며 버텨다오. 끈질긴 생명력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아서 돌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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