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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알게 뭐야!”

“우리 심중에 뿌리박힌 ‘알게 뭐야’를 뽑아내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 비극을 막을 수도 기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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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5.08 17:29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안 순 택 편집부국장

세월호 선원들은 늘 하던 대로 했다. 3등 항해사 박씨는 “일을 배울 때 그냥 양호함이라고 쓰면 된다고 배웠다. 늘 이렇게 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안전점검보고서에 선박 상태, 화물량과 적재 상태, 구명설비 등이 모두 양호하다고 써서 운항관리실에 제출했다. 선장이 해야 할 일을 3등 항해사가 대신하고 선장의 이름으로 써서 냈다. 1등 항해사 강씨는 “안전 점검하기 전에 서류부터 냈다.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늘 이렇게 해왔다”고 말한 항해사 박씨는 세월호에 입사한 지 5개월 된 새내기였다. 박씨에게 그냥 양호하다고 쓰라고 가르친 사람은 박씨의 전임자 내지 선배들일 것이다. 이 전임자와 선배들은 다시 그들의 전임자와 선배에게서 그렇게 하라고 배웠을 것이다. 자칫 큰일 날 수도 있으니 꼼꼼하게 점검하는 법을 가르친 전임자, 신입에게 ‘원칙대로’를 가르친 선배는 없었다.

만약 박씨가 신출내기답게 원칙대로 했으면 어찌 됐을까. “그런 거 다 지키면서 살면 못 산다. 적당히 하면 되지 뭘 따져?” 핀잔을 들었을 거다. 엉터리 안전점검보고서를 받은 운항관리자가 현장을 확인하러 나섰다면. “바쁜데 빨리 갑시다”부터 “사정 다 알면서 왜 그래,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비난이 쏟아졌을 거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한두 번 듣는 얘기가 아닌 터다.

이현주 목사의 동화 중에 ‘알게 뭐야’가 있다. 똑같이 생긴 트럭 두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있었다. 한 차의 짐칸엔 밀가루가, 다른 차엔 시멘트가 실려 있었다. 포대의 모양이며 색깔도 비슷했다. 길옆에 나란히 차를 세우고 소변을 보고는 돌아와 다시 출발했는데, 이게 웬일, 차가 바뀐 게 아닌가. 운전기사들은 덜컥했다. 하지만.

“알게 뭐야. 내 껀가?”

그렇게 해서 집짓는 공사장엔 시멘트 대신 밀가루가, 빵집엔 밀가루 대신 시멘트가 배달됐다. 공사장 인부들이나 제빵사는 배달이 잘못된 걸 알았지만 넘겨버렸다.

“알게 뭐야. 내가 살 집인가?”

“알게 뭐야. 내가 먹을 건가?”

그날 밤, 두 가지 소리가 밤하늘을 깨웠다. 밀가루로 지은 집이 무너져 깔린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과 시멘트 빵을 먹은 아이들의 이빨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던 거다.

시멘트가 밀가루로, 밀가루가 시멘트로 바뀌어 비극을 빚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고, 2년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무려 502명이 희생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는 19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겨우 석 달 전에는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리조트의 강당 지붕이 눈 무게에 무너져 10명의 젊음을 잃었다. 그때 어른들은 무어라 했는가. 미안하다고, 부끄럽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었다. 약속은 그때 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뭐야. 바빠 죽겠는데”, 그렇게 잊어버린 무책임이 세월호 비극을 빚은 거다.

여기저기서 “우리 사회는 기본이 안 돼 있다”란 반성이 나오고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심중에 뿌리박힌 ‘알게 뭐야’를 뽑아내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 비극을 막을 수도 기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동화 ‘알게 뭐야’의 진짜 비극은 말미에 있다. 집을 무너뜨리고 아이들 이빨을 부러뜨린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동화는 ‘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 달나라에까지 땅을 사 떵떵 거리고 잘 살았다’고 들려준다. 우리 현실이 똑 그렇기에 참으로 참담하다.

기본 중의 기본은 사람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누가 무어라 하든, “알게 뭐야. 사람 생명이 달린 일인데, 그것부터 챙겨야 하고 꼭 해야만 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참담한 비극을 끝낼 수 있다. 이 땅 어른들은 정말이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바다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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