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비스마르크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나는 정치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거기에 참여하는 것부터 ‘가능성이라는 삶의 형태를 정하는 종합 예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월호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작은 삶의 방향을 정하려고 전국을 들썩이며 요란스럽게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은 피고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을 보면 1995년 제1회 68.4%를 제외하고는 모두 50% 전후에서 맴돌고 있다. 특히, 2002년 제3회 때는 절반 이하(48.9%)로 떨어진 적도 있다. 이러한 반쪽짜리 대의제는 정치 불신을 일으켜 유권자를 정치로부터 이탈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헌정사상 전국규모 선거에 지난 이틀간 첫 사전투표를 도입 실시 한 결과, 두 자리수(11.49%)의 투표참여율을 보였다.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향후 더욱더 다방면으로 확대심화 해야 할 시기이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유복한 사회로 전환되는 이른바 ‘성숙사회(데니스 가볼르= 정신적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에 다다르게 되면 정치에 관심이 무뎌지는 것은 각국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사항이다.
예를 들어, 투표율이 30%이면 기권한 70%의 의견은 사표(死票)로 전락한다. 물론 기권한 사람은 의무를 포기한 것이며, 의회에서 민주적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불평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투표율이 낮은 상태를 방치 할 수는 없다.
만일 특정이해를 가진 사람들만이 투표에 적극 참여한다면 국민 모두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결국 불공평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개선해야만 하는가. 루소는 ‘인민주권’이 어느 시대이든 기본이며, 시민의 자유로운 민주적 토의(deliberation)를 전제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회 정치에는 토의는 있어도 유권자인 시민과의 토의는 거의 없다. 이런 부분들이 정치 불신을 야기하는 근원적 문제다.
좋은 민주주의는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대표에 의한 의회 정치와 시민의 토의(또는 대담 discourse), 그리고 양자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건전한 의식을 지닌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정치에 참여할 때에만 좋은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의미다. 이를 참여민주주의(partici patory democracy)라고도 한다.
참여민주주의는 지난 1970년 후반 서구에서 태동했다. 60~70년대 서구는 균열의 시대였다. 당시 서구는 미국의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반전활동을 비롯해 환경과 인권, 性 등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는 신 사회운동이 등장했다. 기존 정당들은 당혹스러웠다.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만을 대표했던 정당들에게 性과 환경 등의 가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존 정당들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대변할 수 없었으며, 이로인해 정치와 시민사회의 모순은 점점 커져만 갔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고민된 것이 바로 ‘토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토론을 통해 정당의 대표성을 복원시키자는 의도였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Habamus, U)는 토의민주주의를 ‘의회정치와 시민사회정치’에 의한 두 통로의 토의로 정의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토의민주주의란 대의제 민주주의에 내제한 대표성의 결함을 시민 참여로써 보완하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란 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다 좋은 민주주의로 만들자는 목표다.
여기에서 핵심은 시민 참여에 의한 토론이다. 시민 참여는 단순히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부 예산 편성에도 참여하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적으로 시민참여예산(Citizen Participatory Budgeting)이 주목받는 이유다. 시민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면 어쩔 수 없이 정치권과 대화를 하게 된다.
시민의 의견을 보다 분명히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평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 무렵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됐고, 2011년 지방재정법이 제정되며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이 의무화 되었다.
이 또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는 ‘성숙사회’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이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선거 상황을 보면 투표소가 습격 받거나 대립하는 후보자가 습격당하는 등 선거는 결사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는 사회의 안정에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안정되면 될수록 정치 이탈이일어난다.
오늘날 대부분 국민국가는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전원 참가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접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로 선출된 대표는 의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행한다. 이것을 의회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지만 강제는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 투표율은 내려간다. 투표율이 낮아지면 의회의 의사결정은 민의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법만으로 좋은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참여민주주의의 원동력은 법이나 정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닌 아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무관심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늪에 빠진 반쪽짜리 대의제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시민이여, 정치에 참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