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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추석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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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9.10 18: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금년 추석은 느낌이 남달랐다. 봄부터 도저히 청명한 가을이 올 성 싶지 아니하였다.

침몰하고 무너지고 불타고 죽고 또 죽고. 텔레비전을 켜기가 무서웠다.

색깔마저 뒤엉켜 혼돈의 공간이었다.

교황님이 오셨다 가셨는데도 편두통이 심해졌다. 길거리 피킷 들고 서 있는 이들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그런데, 가을이 오고, 추석이 왔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구나. 자연의 섭리는 좋든 나쁘든 밀어내고 지나가는구나. 추석은 나를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잔소리 하지 말자, 가르치려고 하지 말자, 결심을 하고 추석을 맞았다.

1970년대 개발사업으로 고향을 떠나 대전에 살았다. 태어난 시골집은 없어졌다. 막연한 그리움만 남았다. 가족은 분산되었다. 3대째 맏이인 나는 집에서 차례를 올린다. 40여 명 모인다.

갈수록 어린애들 수가 적다. 자식들을 안 낳는다. 증조할아버지 5남매, 할아버지 7남매, 아버지 6남매, 우리 대는 팍 줄었다. 나는 아들만 둘 두었다.

큰아들은 딸 하나 낳더니 끝이란다. 둘째아들은 결혼할 생각을 아예 안한다. 종손 대가 끊긴다. 어쩌지? 대책이 없다. 내 대가 지나면 몇 명이 모일까? 8명? 4명? 손녀가 출가하면 누가? 바뀌었다. 풍속이 하릴없이 변했다. 이웃과 어울려 음식 나눠먹고 슬마시고 밤새워 떠들고 배탈나 들락거리던 기억은 오래되었다. 명절 문화가 하얗게 바뀌었다.

며느리들이 가짜 깁스를 한다는 뉴스가 떴다. “우리집에는 그런 며느리 없어 다행이에요.” “며느리가 돈 보내왔어요.” 다행이다. 3대째 장손인 내 덕분에 아내는 그렇게 환갑 나이를 먹었다. “큰어머님, 전 부치러 왔어요.” 조카딸 아이가 기특하다. 대학 들어가더니, 예쁘게 컸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아내 얼굴이 환하다.

금년에는 구름이 끼어 밝은 저녁달을 못보았다. 대신 아내 얼굴을 보았다.

“차가 밀려서 서울서 여섯 시간 걸렸어요.” 동생은 새벽에 도착할 요령으로 출발했는데, 여덟 시 넘어 차례 지내기 직전에 들어선다. 그래, 피곤하겠다. 웃는다.

성묘를 갔다. 성묘는 묘를 살피는 일이야. 그냥 절하러 가는 게 아니야. 너희들에게는 고조할아버님, 고조할머님이시다. 합장으로 모셨으니 네 번 절해야 하는데, 재배만 하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무덤에 무턱대고 절을 한다, 상석 아래 바닥에 벌집이 있었는데, 너구리가 파먹었네. 멧돼지가 아니고요? 아이들은 신난다. 이 놈들아. 자주 와 뵈어야 하는데, 나무가 우거지고 산짐승들이 많아져서 산소 돌보기가 힘들어. “누가 벌초를 했지?” 그래, 누가 벌초를 했을까? 나이 드신 할아버지 서넛이 벌초를 했다. 벌초꾼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바빠 오지 않는다. “내년부터는 돈 주고 하셔요.” 글쎄다. 혼쭐을 내주지 못하는 입안이 마른 나뭇잎처럼 바스락거렸다.

성묘를 마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처가에 갈려고요. 군대 간 아들 면회 가려고요. 고삼 수험생이 있어서요. 교대근무 하러 가야 해요. 암, 그래야지. 얽키고 코 꿰어 사는 거지. 안쓰럽다. 저 들판을 보고 가거라. 개울물 소리를 듣고 가거라. 혼자 피어있는 풀꽃 이름을 불러주고 가거라.

대체 휴일로 하루 더 쉬었다. 토요일부터 닷새. 관공서나 그룹은 쉬는데, 우리 회사는 작아서 못 쉬어요. 공무원들은 연금도 많이 받고 노후 걱정도 없잖아요? 차별이 심하단다. 불평불만, 정치 이야기는 하지마, 제발. 그럼 뭔 얘기를 해요, 형님. 다투지 않아야 하는데. 갈등의 골은 깊다. 말이 안 통해. 누가 안 통하는데요? 잘 살고 화목하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소소한 일상이 고맙다. 그러면서, 허전하다. 욕심을 버려야 제대로 삶이 열린다는데. 내 아집은 어디가 실타래인지? 다 내려놓고 맑고 고운 영혼을 가져갈 수 있을까? 제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부끄러움. 궁상떨지 말고 더불어 살거라. 아버님 어머님 산소가 자꾸 떠오른다. 두 분은 나란히 누워 등 돌리지 않고 마주보고 계실까? 해마다 다르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따뜻한 나눔의 시간이 되셨는지요?”휴대폰이 띵동 해서 보았더니, 문자 메시지다. 희한한 친구일쎄. 추석 지나고 인사하는 놈이 다 있네. 미소가 나온다. 명절맞이 메시지가 며칠 전부터 얼마나 많은지. 좋은 글귀 그림 엽서, 동영상까지 보고 지우느라고 애썼다. 헌데, 지나고 나서 인사는 생뚱맞다. 한참을 생각했다. 따뜻한 나눔? 잘 보냈는가? 개념없이 보낸 연휴였던가? 문득 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풍요로우셨는지요, 행복하셨는지요, 즐거우셨는지요? 아무튼 금년 추석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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