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질
[목요세평]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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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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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갑질하지 마라.” “을질 제대로 하세요.”

갑질은 알겠는데, 을질은 뭐꼬? 옆에 있던 병이 끼어든다. 병질하냐? 병질은 또 뭐꼬? 우라질, 지랄들, 한바탕 웃고 말았다.

갑질, 을질은 아직 사전에 올라있지 아니한, 신문이 만들어낸 조어다. 갑을관계는 계약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용어로, 갑·을은 주종이나 우열, 높낮이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나열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로 변질되었다. 갑질은 대기업의 횡포가 극심한 경제계에 두드러지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작동하고 있다. 편의점주가 자살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투신했다는 뉴스는 새로운 게 아니다. 상대에 대한 무례함, 인격 모독 폭언, 무리한 요구까지 서슴지 않는 일그러진 자본과 권력의 오만함이다. 슈퍼 갑질, 울트라 갑질도 등장한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90% 이상이 갑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영혼 없는 직장상사, 거래처와 규제담당 공무원을 갑질의 주범으로 꼽았다.

갑질 문화가 깊이 뿌리 박혔다. 택배기사에게 부리는 짜증, 식당 종업원에게 하는 막말은 일상이 되었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뿌린 대로 거둔다. 인간은 모두가 누군가의 갑이면서, 동시에 을이다. 영원한 갑은 없다.

누가 갑인가? 정치인과 유권자, 기업과 소비자, 돈과 사람, 며느리와 시어머니, 아내와 남편, 누가 을인가? 갑과 을은 동반자다. 갑질 연애, 을질 연애를 다룬 책도 나왔다. 갑질에 대해 을은 반란을 준비한다. 갑의 뒤통수를 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고 싶다고, 대들고 개긴다. 을의 억울한 목소리가 공분을 일으킨다. 갑질과 을질의 갈등구조는 불편한 진실이다. 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묘책이 없다.

순우리말 접미사 ‘-질’은, ‘노릇’ 또는 ‘짓’과 비슷한 쓰임새를 갖는다.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가위질, 걸레질, 망치질, 부채질, 삽질, 톱질), 신체부위를 이용한 행위(곁눈질, 손가락질, 입질, 주먹질), 직업이나 직책을 비하하는 뜻(목수질, 선생질, 순사질 등),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계집질, 노름질, 서방질, 싸움질, 자랑질), 물질을 가지고 하는 일(물질, 불질, 풀질, 흙질), 소리를 내는 행위(딸꾹질, 뚝딱질, 수군덕질) 등 ‘-질’이 붙은 말은 수 없이 많다.

‘-질’이 붙어 아예 다른 뜻이 돼버리는 단어도 있다. 삽질이 그렇다.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연유해, 쓸데없는 행위를 비꼬아서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가, 프로그래머들이 반복적 수작업을 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수다 떠는 행위로 분화되기도 한다.

친목질도 그렇다. 인터넷상에서 일상적으로 같이 서로 알고 친한 사람끼리 놀고 새로 들어온 사람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로 쓰인다. 친목은 좋은 뜻인데, 친목질은 커뮤니티를 망가뜨린다.

임금질, 대장질 등을 격하게 쓰면 모욕죄가 성립한다. 연변 조선족들은 비하감 없이 사용한다. “의사질 잘 하고 계세요?” 하고 말해도 비하적인 뜻이 없다고 한다. ‘-질’이 비하감 없이 쓰여야, ‘-질’에게 미안하지 않을 텐데.

부아김에 서방질한다는 속담이 있다. 세상이 답답하고 화나는 일이 많다. 허나, 화를 참지 못하여 사람이 못할 짓을 저지르지 말자.

‘-질’은 웬만한 것에는 다 붙여도 통한다. 우리말은 접미사의 활용이 풍부하여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단어를 끝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파생접미사 ‘-질’을 다룬 논문도 많다. 신조어가 난무한다. 글질, 펌질. 외래어에 마구 붙이기도 한다. 마우스질, 카톡질, 블로그질, 트윗질, 시크질, 위키질…….

당신은 지금 무슨 질을 하고 계십니까?

갑질, 을질, 병질에 카톡질, 친목질 하고 계십니까?

불도저 앞에서 삽질, 자랑질, 서방질 하고 계십니까?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