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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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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1.20 19:03
  • 기자명 By. 김등모 목사
▲ 김 등 모 대전시기독교연합회장·대전영락교회 담임목사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발 빠른 움직임들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추운겨울을 힘겹게 보내야 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온정의 손길이 곳곳에서 말없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의 김장 및 연탄 나누기’ 행사를 벌이는 많은 단체들과 기관들을 볼 때면 그래도 우리 사회의 양심이 아직 살아 있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안도현 시인은 대표작 ‘너에게 묻는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길거리에 타고 남은 재로 변해 흉물스럽게 방치된 연탄.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탄은 제 몸을 뜨겁게 태워 주위를 따뜻하게 해준 결과가 연탄재였다.

오늘날은 어느 시대보다 남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오직 나와 내 가족, 내 것만을 위해 살아가도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도현은 ‘연탄 한 장’이란 시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요즘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자녀를 꺼려하고, 심지어 애 낳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녀로 인해 자신의 삶에 얹혀 질 각종 부담과 제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거나, 인생의 황금기를 육아에 쏟아야 하며, 수입의 상당부분을 양육과 교육에 쏟아 붓고 나면 자신들의 인생은 그저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태를 꼬집기라도 하듯 안도현은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이며, 또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이라고 노래한다.

가을 넘어 겨울 문턱에 들어선 요즘 가로수가 있는 거리는 낙엽으로 뒤덮혔다. 청소하는 분들에게 떨어진 낙엽은 방치된 연탄재처럼 흉물스럽고 골치 아픈 존재일지 모르나 삭막한 도시의 현대인에게 낙엽은 마음을 만져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건강한 낙엽수는 한 겨울에 벌거숭이로 서 있다. 낙엽을 모두 떨어뜨려야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수분이 모자라기에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려 수분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만약 그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낙엽수를 사랑하는 주인은 그 나뭇잎을 따 주어야한다.

그래야 혹독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나무는 긴 겨울을 날 수가 없다. 잎을 자르는 아픔이 있어도 잘라내야 한다. 그래서 낙엽수는 가을이 되어 햇빛이 작아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잎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겨울을 스스로 준비한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낙엽은 참 아름답다. 마냥 푸르기만 하던 잎이 노랑, 갈색, 빨강 등 세상을 붉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히 물든 색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낙엽은 자기를 잘라 떨어버린 나무의 뿌리를 감싸주어, 겨울의 추위를 녹여주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낙엽들은 반드시 내 나무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한데 어울려 이 나무 저 나무의 뿌리를 모두 감싸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몸을 부서뜨리고 가루가 되어 나무의 양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시작과 함께 곧 바로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떨어뜨린 가슴 아픈 계절이다. 세상에 낙엽처럼 떨어진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전부를 감싸주고 마침내 자신을 내어주어 세상으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런 사랑을 받은 자로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 시인의 외침 앞에 발걸음을 멈추어 보자. 그리고 주위의 힘겨워하는 이웃을 한번쯤 돌아보아 따뜻한 사랑으로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보자.

검은 몸을 불살라 온 몸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자. 나를 산산이 으깨어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연탄재가 되어 보자.

“남의 손을 씻다보면 내 손이 깨끗해지고,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고, 남을 위해 기도하면 내 마음이 먼저 맑아진다”는 남미의 해방신학자이신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의 말처럼 사랑과 은혜와 베품은 남을 위한 희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위한 삶의 지혜라는 것을 잊지 말자. 화려했던 낙엽을 떨어뜨려 자신을 비우는 나무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계절이길 바란다.

김 등 모 대전시기독교연합회장·대전영락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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