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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국민과의 신뢰는 위대한 정치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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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1.27 18: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우희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청년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애인을 기다리다 비에 불어난 물에서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 이른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미련하도록 약속을 굳게 지키는 사람 혹은 고지식해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지난 2010년 당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미생이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비꼬았다.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기업 및 교육 중심도시로 만들자는 수정안에 박 전 대표가 반대하자 이를 미생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며 반박했다. 덧붙이길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라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라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렇듯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에 관한 한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매우 엄격한 정치인이었다. 여기서 ‘정치인이었다’고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현재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가 ‘불신’의 아이콘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신주처럼 떠받들던 정치적 약속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을 뿐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없었고 국민들의 의견도 구하지 않았다.

취임사에서 밝힌 경제민주화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국민안전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헛말임이 입증됐다. 게다가 유족들에게 ‘진실규명’을 약속했지만 뒤에 가서는 국회의 책임으로 떠넘겨버렸다.

국민과의 공적 약속인 공약도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줄줄이 파기하거나 변경한 것도 모두 불신의 상징이다. 대선 주요 공약이었던 전시작전권 환수는 슬그머니 무기한 연기했고,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소득 하위 70%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20만원 차등지급으로 축소했다.

현재 추진 중인 정부의 철도민영화도 공약에 반하는 정책이며 저출산 대선공약인 ‘저소득층 조제분유 및 기저귀 지원 사업’도 예산의 전액 삭감으로 공약(空約)이 됐다.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누리과정 지원을 비롯한 ‘무상보육’도 무상급식의 폐지를 통해 실현하겠다는 어거지라서 납득하기 어렵다.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공약은 외려 통행료의 인상으로 둔갑했다.

이밖에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반값 등록금 실현, 대기업 신규순환출자금지,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실시,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 공공부문 비정규 폐지 및 정규직 고용 등 대선 후보 당시 내세웠던 수많은 공약이 2년새 소리 소문 없이 파기됐거나 파기되는 중이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던 취임사의 일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이래서야 어찌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으며 동반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정치인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잘못된 정책들이라면 공약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약속할 때는 천금같이 무거워야 하며 신중해야 한다. 애인과의 약속 때문에 미생은 목숨을 잃었다. 사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는데, 하물며 국민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은 미생이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는 말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된 경우라도 절차와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고 상황이 변했다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약속 당사자인 국민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꼭 있어야 할 절차다. 그게 소통이고 신뢰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깨거나 바꾸면서 입도 닫고 귀도 닫는다면 결코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에 길이 남는 정치 지도자로 기억되려면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달 19일이면 대통령 당선 2주년을 맞는다. 그간 국민과 동반자의 길을 걸어왔는지, 지금 걷고 있는지, 앞으로 걸어갈 것인지 곰곰 되짚어봐야 할 때다.

우희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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