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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유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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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3.31 18:16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봄이면 생각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추기경의 유언은 우리 사회에 장기기증 같은 생명 나눔을 비롯해 사랑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 법정 스님은 유서를 미리 썼다. 1971년 ‘미리 쓰는 유서’에서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사바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비움의 철학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유언에는 시대적 상황이 녹아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의 “내가 죽으면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적을 막겠으니 동해에 장사 지내 달라”에는 왜구를 물리쳐 나라에 안녕을 가져오려는 백성 사랑이 깃들어 있다.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죽음을 앞뒀을 때 가뭄이 무척 심했다. 태종은 “내가 죽어 넋이라도 살아 있다면 이날만은 기필코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유언했다. 이 한이 감천하여 음력 5월 10일에는 꼭 비가 내린다 하고, 이 비를 ‘태종우’라 한다 했다. 세종시의 ‘은하수공원 장례문화센터“는 고 SK 최종현 회장의 유언이 그 출발점이 됐다.

▷“내 시신은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하라.” 그의 화장 소식은 고건 당시 서울시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으로 이어지는 등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유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오늘이 ‘유언의 날’이기 때문이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펼쳐 온 기독교계가 중심이 돼 제정한 날로 죽음(死, 4)을 한(1) 번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이날을 잡았단다. 죽음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남은 생을 더욱 보람있게 살기 위한 또 다른 준비로서 유언이다.

▷웰빙(Well-being) 못잖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세태의 반영일 듯하다. ‘내면기행―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라는 책에 따르면 옛사람들은 자신의 무덤에 묻거나 묘지 앞에 세울 비명을 미리 짓는 ‘자명(自銘)’을 통해 삶의 의미를 구하고자 했다고 한다. 자명이든 유언이든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살아 있는 동안 죽음 앞에 설 자기 모습을 가끔씩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은 날들을 보다 소중히 쓰겠다는 다짐이자, 아름답고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한 삶의 지혜가 아닐지.

안순택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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