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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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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4.23 18: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우 희 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조선 전기 계유정란(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에 등극하도록 하는데 공을 세운 대표적 인물이 한명회(韓明澮)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무력화시키고, 그들을 제거하였으며 남이(南怡)의 옥사를 처리하는 등 20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네 번의 1등 공신에 책록됐다. 권람(權擥),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훈구세력의 거두로 꼽힌다. 예종때 영의정을 지냈고 성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어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서정(庶政)을 결재하였다. 이때도 병권을 틀어쥐어 병조판서를 겸하였고 그의 세도는 절정에 이르렀다. 소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었다.
 
대간들의 집요한 탄핵에도 건재함을 보여주었던 당대의 권신 한명회도 한순간에 추락하게 되는데, 뇌물 스캔들에다 왕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정자인 압구정(狎鷗亭)에서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일 때문이었다. 
 
성종 12년, 그는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푸는데, 정자가 좁아서 궁중에서만 사용하는 천막을 빌려 달라고 왕에게 청한 것이다. 사실 정자가 좁다는 것은 구실일 뿐 자신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해 천막을 빌리려는 것이었다. 왕이 이를 불허하고 좀 더 넓은 정자에서 연회를 베풀라 명하자 자신의 아내가 아파서 연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또다시 거짓말로 왕을 능욕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탄핵을 받아 모든 관직에서 삭탈된다.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2개월여 만인 엊그제 사의를 표명했다. 역대 최단기 재임 국무총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이총리는 인준 청문회 당시부터 거짓말 자판기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온갖 의혹에 구차한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번 정치자금 수수 의혹 해명과정에서도 “안 받았다” “친밀하지 않다” “독대한 적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으로 말바꾸기를 거듭 반복해 국민적 지탄을 자초했다. 
 
조선시대 왕은 오늘날로 치면 국민이다. 한명회가 거짓으로 왕을 능멸하고 노골적으로 뻗대다가 사헌부 등 대간들에 의해 탄핵받고 추락하는 꼴이 지금 거짓 퍼레이드로 국민을 속이고 능멸하다 사직서를 내고 추락하는 이총리와 비슷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거짓말은 덕목이라 할 정도로 관대하다. 오죽하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록 고관대작들이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공평하게 검토해보면 열 마디 중 일곱 마디가 거짓이더라”고 했을까. 왜 이리도 지도자들의 거짓말이 일상에서 횡행하고 그 거짓에 대해 너그러운 것일까? 
 
거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우리 사회구조와 쉽사리 잊어버리는 망각이 바로 그 원흉이다.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꽁무니 빼고 도망가면서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거짓말 때문에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갔어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참신한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해놓고 독재를 이어갔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징벌 받지 않는 이 사회구조가 원흉이다. 
 
747(국내 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권의 선진대국)이란 거짓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그 어느 누구에게조차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증세없는 복지’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행복주택’ ‘행복전세’ 등등 수많은 공약파기(결국은 거짓말)에도 그저 무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주범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이총리나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해 도끼로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 찍었다는 한명회나 모두 그 정도의 거짓말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게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을 반복하면 실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지도자들이 거짓을 반복하면 신뢰를 잃는 법이다. 그래서 잦은 거짓말은 지도자들에게 독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하는 지도자를 어느 누가 신뢰하고 그들의 정책을 따르겠는가? 
 
높은 도덕성을 지닌 신뢰받는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실한 가치를 지닌 건전한 사회로 지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신뢰받지 못하는 자들이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압구정 연회’ 해프닝은 한명회의 직첩을 거두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성환종 리스트’건은 앞으로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신뢰 잃은 정치는 정치지도자 개개인의 패가망신을 넘어, 국가사회의 건전한 유지와 지탱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전국을 뒤흔든 이번 일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 희 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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