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복면’ 열풍이다. 출연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불러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검사가 복면을 쓰고 범죄자를 응징하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복면을 콘셉트로 한 아이돌까지 등장했다. 복면은 얼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물건이다. 보통은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할 처지에서 사용한다. 록스타를 꿈꿨으나 트로트를 부르게 된 게 부끄러운 ‘복면 달호’의 달호가 그랬고, 지질한 소시민으로 프로레슬링에 도전하는 ‘반칙왕’의 대호가 그랬다.
▷‘반칙왕’이나 ‘복면 달호’의 복면은 또 다른 나다. ‘반칙왕’의 대호는 출근길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실적부진에 상사에게 혼나는 그는 복면을 쓰면 달라진다. 꼼짝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불량학생들에게도 복면을 쓰면 나무라고 혼쭐내는 어른이 된다. 복면은 현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또 다른 나였다. 복면을 쓰고 노래하는 달호는 복면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그런데 복면 음악 프로그램은 정반대다. 온통 가리곤 노래에 담긴 노력과 열정만 봐달라고 요구한다. 편견없이 ‘노래 실력’만 봐달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밝히지 않고 소비자의 반응을 본다는 점에서 ‘블라인드 테스트’와 닮았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길거리 악사로 변신해 워싱턴의 지하철역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다. 45분의 연주 동안 수천 명이 지나갔지만 귀를 기울인 사람은 고작 7명뿐이었다. 청바지 차림의 그를 알아본 사람도 없었다. 1713년에 제작된 350만 달러(약 37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했음에도 그랬다. 비싼 돈을 내고 거장의 콘서트에 가는 이유가 단지 음악을 좋아해서만은 아니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브랜드나 경력이, 유명세가, 외모가, 학력이, 재산이, 집안이 그 사람 내면보다 중요시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한다는 점에서 ‘계급장 떼고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는’ 복면 음악 프로그램은 흥미롭다. 복면 달호의 라이벌 나태송은 “가수는 첫째도 노래, 둘째도 노래, 셋째도 노래야”하고 달호를 가르친다. 그런 기본을 돌아보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복면을 쓴 건 우리들이 아닌가. 스펙이란 복면, 외모라는 복면…. 복면으로 가림으로써 진짜를 보라는 역설(逆說), 우리 세상이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역설(力說)이기도 하다.
안순택<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