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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을음과 함께한 30여년, 한상묵의 취묵향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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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6.09 19:09
  • 기자명 By. 김학모 기자

[충청신문=음성] 김학모 기자 = 먹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묵장(墨匠)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묵척(墨尺)이라 불릴만큼 천하게 여겼다. 때문에 먹을 만드는 생산과정이 구두로만 전해졌고 문헌의 흔적도 많지가 않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도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무릇 먹 가는 자는 더딘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편안한 복장에 수줍은 미소가 가득한 한상묵 씨. 작업장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그렇듯 부담스럽지 않다.

재촉하는 것도 없고 방정스런 동작도 없다. 자연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그의 모든 행동에는 편안함이 묻어난다.

한상묵씨가 묵(墨)을 처음 접한 건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1986년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변변치 못한 직장 때문에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때마침 먹 공장을 운영하던 이모부의 권유로 지금까지 30년 세월을 먹에 빠져 살아오고 있다.

이모부의 어깨너머 4년여 동안 배운 실력으로 독립할 수 있었고 화성시 동탄면에 자리 잡으면서 제법 이름을 알리게 됐다. 특히 2006년 경기도 명장, 2014년 고용노동부 숙련기술전수사로 인정받으면서 고품질 먹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먹의 고장 음성에 터를 잡다

지역개발에 따른 이유로 부득이 이사를 결심하게 된 한 씨는 우연히 음성향토사를 접하게 됐고 지금의 음성읍 초천리 자리가 소나무가 많고 해발이 높아 먹뱅이라고 불릴 만큼 먹 생산이 활발히 진행됐던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먹을 생산하기 위한 가마터와 작업실, 건조실 등이 마련돼 있으며 먹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우수한 먹 생산위해 전통방식 고집

취묵향에서 생산되는 먹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송연먹은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을 모아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이고, 유연먹은 콩, 유채, 동백기름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을 모아 만든 먹이다.

특히 송연먹은 번짐이 적고 색도 고와 품질이 우수한 편이다. 송연먹 10kg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나무 수십그루가 사용된다.

너무 잘 태워도 안되고 너무 안타도 문제이기에 가마의 굴뚝 기울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정성을 들여 채취한 그을음은 소의 가죽이나 연골을 삶아 만든 아교와 향료를 섞어 떡 반죽 하듯 수천, 수만 번을 주물러야 한다.그런 다음 나무틀에 넣고 성형한 뒤 건조실로 옮겨 크기에 따라 10일에서 50일 혹은 2년 넘게 자연건조시킴으로써 먹이 탄생하게 된다.

 

조선왕조실록, 팔만대장경 인경

한 씨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다.

문화재청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잉크가 아닌 먹으로 인쇄하는 작업이다. 그을음과 꿀, 참기름, 피마자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면 변색도가 느리고 색감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또 하나는 해인사 측으로부터 의뢰받은 팔만대장경 인경(印經,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종이에 인쇄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5년~10년 가까이 진행되는 이 작업은 한 씨가 평생에 남을 큰 성과로 기록될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다.

 

먹에 취해 걸어온 30년 발자취를 남기다.

먹을 접하고 전통방식의 먹을 생산하고 싶었던 한 씨는 전국을 돌며 문헌자료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사농공상(직업을 기준으로 가른 신분 계급)에 따라 장인들의 사회적 신분이 한층 격하돼 그 자취를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먹을 만드는 솜씨 그 자체 보다는 쟁이라는 신분상의 천시, 아무리 일해도 부를 누릴 수 없는 한계와 첨단 문물이 장인들을 그들의 세계에서 떠나게 만들었다”라며 “그로인해 한국의 전통공예는 점차 단절되고 한국적인 문화 창조는 그 기반이 허약해졌다”고 아쉬워했다.

끝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절박감과 전통공예품인 먹을 연구하고 계승발전 한다는 자긍심에 지금도 품질과 가격에 싸우면서 운명적으로 나는 먹장으로 살아가고 있고 또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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