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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우리편 아니라고 물어뜯을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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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6.18 18: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메르스 창궐에 정부가 무능과 무대책으로 허둥대는 사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발 빠르게 대처해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은 지난 4일 늦은 밤 긴급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의사’로 알려진 삼성 서울병원 의료진 35번째 환자의 동선과 접촉자 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서울시 메르스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전염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고 정부의 정보 비공개로 인한 메르스 확산을 경계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회견은 보건당국과 삼성서울병원으로 하여금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고 적극적인 방역대책을 내놓게 만들었다.

정보부재로 어찌할 바 모르던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불안을 해소해주고 대책을 마련한다 하는 것은 자치단체장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니, 보건당국이 안하는 일을 자치단체에서 선제적으로 취한 것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견이 있자 다음날 법무부는 “메르스와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를 엄단 조치하겠다”고 발표해 박원순 시장을 정면으로 조준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독자적 대응에 대해 비난하며 박 시장에게 포문을 열었다.

이후 벌어진 일들은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딱딱 맞아 돌아갔다. 메르스 자각 증세 시점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35번째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악화됐다”며 박 시장을 맹비난했고 여당의원들은 종편에 줄줄이 나와 “한밤의 기자회견이 부적절했다” “정치적인 쇼다” “대권행보다” “똥볼이다”라며 벌떼처럼 달라 들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박 시장을 고발하고 이에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면서 박 시장 때리기는 최절정에 이르렀다.

지나치게 상황을 비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피란민들을 돌보며 장기전에 대비해 병사들을 조련하던 이순신 장군이 온갖 탄핵으로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던 사실이 떠올려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 편이 아니면 아무리 잘해도 물어뜯느라 눈알이 빨개지는 이 세태가 임진왜란 당시와 다를까? 조정은 전쟁 중에도 붕당으로 갈라져 상대를 끌어내리느라 정신없었다. 결국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로 매질 당했다. 그러한 조정의 헛 삽질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 대패해 목숨을 잃었고 조선 수군은 완전히 궤멸돼 나라는 다시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당시 우의정 정탁이 “무서운 문초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여 혹시 성상의 호생(好生)하시는 본의를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바”라며 구명 상소를 올렸을까?

비난과 비판도 근거가 있어야 하고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지금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인 이 상황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 시기에 우리 편 아닌 사람이 옳은 일 하는 꼴 못 보겠다고, 아니 인기 올라가는 꼴 못 보겠다고 무차별적으로 융단폭격 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다.

국가적 위기 시 언론의 보도도 마찬가지다.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진영논리로 접근해 보도한다. 얼마 전 민언련이 발표한 모니터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은 컨트롤타워로서의 책무를 기피하는 청와대와 대통령을 비판하기 보다는 ‘시민책임’을 강조하거나 ‘박원순 책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종 질병이나 재난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피해에 책임을 지는 당사자는 바로 국가다. 그리고 그런 국가의 작동을 감시하는 것이 언론이다. 현재 그 책임들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여전히 재난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보도에 있어서 언론은 정쟁을 부추기거나 책임소재를 흐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의 위기대응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곧바로 ‘종북’으로 몰아가고 “국민이 미개해 위기를 헤쳐 나가지 못 한다”는 식으로 언론이 물 타기를 하는 한, 위기는 돌파될 수 없다. 설령 헤쳐 나간다 하더라도 또 다른 위기가 닥쳐와 악순환을 거듭하게 할 뿐이다.

이미 언론이 메르스의 국면에 헛발질 하는 동안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미군의 탄저균 반입,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의 문제는 슬금슬금 물 건너가고 최악의 가뭄도 어떻게 대처되고 있는지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

 

우희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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