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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승리의 날로 기념하자”는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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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20 18:2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우 희 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승리의 날로 기념하자”는 역발상 무더웠던 여름도 막바지다. 염천의 끝자락에서 불꽃놀이로 요란했던 광복 70년을 다시금 돌아본다. 지난 8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의미를 새겼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건국 67주년’이란 말은 두고두고 입맛을 쓰게 만든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수립되었던 그날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이 주장하는 ‘건국’의 개념은 웃기지도 않는 얘기다. 최근 KBS 이인호 이사장이 모 일간지에 이와 관련된 칼럼을 게재하고 보수진영이 가세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인가 본데, 가소롭고도 냉택없다.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실질적으로 정부를 수립해 나라를 세운 날이다. 공산당과 싸우며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 지킨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고 불꽃축제라도 멋있게 벌여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 건국일이 있고 심지어 북한도 있는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없다. 자신의 뿌리도 모르는 부끄러운 민족이다.”

사실관계부터 바로하자. 세계 각국에 ‘건국절’이 있는데 우리만 없다는 이 전제적인 주장부터 틀렸다. 전제가 틀렸으니 나머지 주장 모두 오류다. 뜯어보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해 기리고 있다. 미안하지만 보수 세력들이 부러워하는 ‘건국기념일’은 없다. 영국·독일은 아예 건국기념일이 없다. 다만 독일은 1990년의 동·서독이 통일한 10월 3일을 ‘통일절’로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 스페인·프랑스·호주 등에는 건국기념일이 있긴 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 프랑스혁명이 시작된 날, 영국이 뉴사우스웨일즈에 식민지를 건설한 날을 각각 지정했다. 자랑스런 민주공화국 건설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어떨까? 중국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이기고 북경을 수도로 한 공산당 국가를 건설한 10월 2일을 건국절로 정했고 북한은 정부를 수립한 9월 9일을 건국절(정부수립일)이라 했다. 보수진영에서는 특히 “심지어 북한도 있는데…”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봉건잔재를 일소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 그 자체를 위대한 일로 생각하는 이들과 우리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일본은 어떤가? 2월 11일이 건국기념일(建國記念の日)이다. 기원전 660년 진무텐노(神武天皇)가 나라를 세우고 즉위한 날이 1월 1일이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니 2월 11일이라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엔 개천절(開天節)이 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운 날이다. 영어로 ‘National Foundation Day Korea’이니 우리말로 틀림없는 건국일이다.

나라마다 기념하는 날이 다르고 그 이유도 다 다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없다거나 혹은 민주공화국을 세운 날이어서 이를 기념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게망게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민족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간 여러 왕조와 체제가 바뀌었지만 한 번도 역사의 정통성이 부정된 적이 없다. 주권을 외세에 빼앗긴 36년의 공백이 있지만 이전의 모든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영화 ‘암살’에서도 확인했듯이 우리 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고 임시정부를 세워 국가의 정통성을 이어왔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어떤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날을 기념일로 지정할 때 명칭은 매우 중요하다. 그 날의 성격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8월 15일은 독립, 해방, 광복의 의미가 겹쳐있다. 지금도 ‘독립’이라는 말과 ‘해방’이라는 용어는 빈번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신생국가의 이미지가 있는 ‘독립’이라는 용어와 타율적 결정으로 얻은 자유란 의미의 ‘해방’이라는 용어는 8·15의 명칭에 적합지 않다. 광복이란 말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 상태를 암흑이라고 보고 자주 국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온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족독립, 국권회복, 자주의식의 표현이며 일제강점기간에도 국가와 민족이 계승되어 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한다. 북한도 오랫동안 ‘조국해방기념일’이라 하다가 최근에서야 ‘조국광복의 날’로 바꿨다.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이 ‘광복절’을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승리의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우리의 노력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실제 일제 강점기하에서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은 눈부신 것이었으며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활약했고 미군과의 합동작전을 위한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이 전쟁에서 철저히 객체로 취급받았다. 안지사의 제안은 우리를 역사의 주체자로 재평가하자는 역발상인 셈이다.

100만 중국군대도 못한 일을 한 젊은이가 해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제국주의와의 싸움에서 우리 선조들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건국절’ 타령이나 하고 있고 남의 나라 ‘승전기념일’에 참석하네 마네 하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우 희 창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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