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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65주년 DMZ를 가다

DMZ 병사들을 위한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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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14 19: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 백마고지로

동부전선, 펀치볼 트레일을 걸으며

 

지난 8월 DMZ 지뢰 사태가 우리 측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이끌게 된 것은, 정부보다 20대 청년들이 보여준 용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확신 할 수가 있다.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몰아가던 좌파세력들을 이번 사태에서 잠재운 것은 미래 사회의 주축인 20대 청년들의 애국심 발로였다.

전역을 미루고 예비군복을 여미는 그들의 정의로운 기운으로 사건 사안마다 등장하던 남남갈등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그들이 보여준 애국심은 어디서 시작 한 것일까? 그것은 최전방 적과 대치하면서 마음에 품어진 절박함에서 나오는 애국적 갈망이 아닐까 싶다.

65년 전, 전쟁사의 고전이 된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후, 6·25 전쟁은 극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그러나 중국의 개입으로 1·4후퇴를 거치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치룬 전선에 통한의 3·8선이 만들어진 후, 탄생된 비무장지대는 한국 근대사에서 조국을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특별한 곳이 아닌 땅 DMZ 그러나 국군이 목숨으로 지킨 이 최일선의 보루를 지금 젊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눈보라 치던 겨울철에 동부전선 펀치볼과 초록 풀잎이 무성한 여름철에 서부 전선 중부전선 을 밟았다.

당시 비무장지대에서 적을 막으려는 군인들을 향해, 전쟁이라는 저주를 막기 위해 서 있는 병사들을 향해 길을 나섰다.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 백마고지로

파주의 제 3땅굴을 들어가 본 후 걸어간 경의선 철도를 개조해서 만든 자유의 다리에서는 외신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한국인 관광객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북한의 호전성과 핵실험 등 만성적인 남북 대치관계로 AP, CNN등 외신기자들이 수시로 이곳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서부전선이 있는 임진각 휴게소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안보 관광을 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압록강에서부터 1·4후퇴를 하며 전쟁에서 결국 승패를 내지 못한 당시 상황을 생각하니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서부전선에 이어 중부전선의 격전지였던 철원으로 향했다. 철원에 있는 제 2땅굴을 들어가 헬멧을 쓰고 고개를 숙이며 걷는 동안, 당시 미세한 폭음을 감지한 초병의 위대한 경계력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그 초병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분명히 혹독한 비극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가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날 그 병사의 빈틈없는 경계근무 이후 끈질긴 발굴과 그리고 북괴가 차단벽에 설치한 지뢰와 부비트랩에 산화한 젊은 우리 병사들의 장렬함은, 후방에서 있는 사람들의 알량한 애국심으로는 측량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을 실감 하였다.

자유를 위한 희생 (원제 WAR IN KOREAN ) 이라는 책으로, 플리처 상을 받은 당시 뉴욕헤럴드 튜리분지 의 30세 여성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 기자는, 직접 한국전을 초기부터 취재하고 군인들과 후퇴하면서 젊은 병사들의 용맹성과 때로는 미숙하고 겁에 질려 허겁지겁한 모습을 보며, 세상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세상을 지키려면 전쟁터에서 싸울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결국 비참한 경우를 겪는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여준 흥남철수와 공산치하에서 횡포를 당했던 북한 주민들의 피난길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지마전투와 버금가는 처절했던 장진호의 전투는 중공군이 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내려오는 처참한 과정의 시작이었다. 그 전투는 보랏빛 고원지대에서 포위된 미 해병대가 해병사상 최초로 후퇴한 참으로 고된 생과사의 여정이었다.

2땅굴에서 나와 철원의 백마고지를 마주보는 전망대에 올랐다. 398m 높이 야산의 백마고지는 교착된 전선에서 휴전 시, 한 치라도 한계선을 더 차지하려는 군인들의 눈물겨운 애국심으로 6·25 전쟁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되어 버렸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무려 7차례나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격전 끝에, 김종오 장군이 이끄는 육군 9보병사단의 승리로 중요한 중부 요충지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백마고지기념관에 들려 총알로 구멍이 난 어느 무명 병사의 철모를 보고 전쟁의 상황을 가슴 저리며 그려보았다. 이어 허물어져 가는 역사의 증거물 노동 당사를 가니, 으깨진 낡은 시멘트 벽 사이에 핀 한 줄기 파란 풀을 보았다.

노동당사는 당시 인민군 철원 당사였는데 러시아 양식으로 고풍스러웠겠지만 전쟁의 상혼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당시의 격랑 속에 얼마나 수많은 양민들과 국군들의 희생이 있었던가. 비록 이름없는 풀일지언정, 그 생생한 초록빛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치유의 푸른 생명으로라는 가슴에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 자동차에서 라디오 FM방송에서 클라식 음악이 들린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바그너의 음악이었다. 휴전선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이런 음악을 듣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군인 이전의 한 인간의 내적갈등을 보여 주려 만든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전주곡인 발퀴레의 기행을 삽입하였다.

어쩌면 전쟁으로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운명과 그 내재적 고통은, 신묘한 기행으로 외에는 다른 것으로 표현 할 수 없기에, 코폴라 감독은 바그너의 이 음악을 넣은 것이 아닐까 싶다.

 

 

동부전선, 펀치볼 트레일을 걸으며

재를 넘어가는 령 마다 군 부대가 많이 있어 최 전방임을 실감했지만, 과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생각이 안들 정도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1951년 여름, 미 해병대 1사단과 국군해병1연대 그리고 용맹스러운 프랑스군이 해안분지 확보에 중요한 모택동고지와 김일성고지를 치열한 백병전 끝에 점령하였다.

서양화채그릇과 비슷한 지형이라 하여 펀치볼 이라 명명된 이곳은, 을지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언덕에서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마치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한 지형으로 오목하고 아담한 경치 좋은 이 마을은, 헬리콥터로 벌이는 공중강습작전인 헬리본 작전을 처음으로 했던 곳이었다.

양구에서의 첫 날, 전동차로 깊숙이 내려가 제 4땅굴을 들어가 보았다. 마치 대단한 천연동굴을 관광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50년 북한 공산당의 전쟁 도발 후, 70년대의 광기어린 땅굴 침략 이 후 지금까지도, 북한은 끊임없는 적화야욕을 이 땅에 진저리치게 스며들고 침투 하고 있다.

오후에 트레킹을 하려 사무소를 찾아갔다.

민간통제구역으로 50여년 만에 자연 생태관광 코스일환으로 제한적으로 개방된 펀치볼 트레일은 4 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먼 맷재길과 만대벌판길, 평화의 숲길 ,오유밭길로 한 코스 당 약 15km 정도 길이로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중 이틀간 두 개의 코스를 트레킹하였는데 안내를 해주시는 트래킹 가이드분들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졌다.

무엇보다 해안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마을문화를 듣는 평안 함과 함께 곳곳에 아직도 지뢰매설지역으로 빨간색의 경고 팻말이 있어 긴장감도 들었다. 따라서 이 근처가 여전히 얼어붙은 삼팔선이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곳 한 겨울의 자작나무 숲이 마치 시베리아의 숲에 온 것 같은 그 특유의 자태를 보이며 드문드문 나타났다. 어쩌면 유령 같기도 한, 우수 어린 겨울 나무, 자작나무의 피부는 푸른 색보다 더욱 투명하였다.

자작나무 숲을 얼마나 걸었을까.

어린 시절 막연히 꿈꾸었던 유량하고 무심하기도 한 그 징한 벌판이 만대 벌판길에 칼로 잘라내듯 나에게 일격을 가했다. 그 일격은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난다는…

그러기에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고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을 지킨다는 노래를, 군대시절 수색의 한 대포 집에서 불렀던 아련한 추억과 향수마저 떠오르게 한다.

박수근 미술관과 소지섭 길이 있는 양구의 유명한 관광지 두타연 트레일 보다, 이곳 펀치볼 트레킹을 하며 느낀 감흥이 더 컸던 것은, 아마 이 전투가 벌어질 때, 태어난 세대여서 그러하리라.

펀치볼을 떠나는 날, 가칠봉 능성에 위치한 을지 전망대를 올라갔다. 그 곳은 군부대가 허가를 해준 대한민국 최고의 살아있는 안보관이었다. 그곳은 매서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DMZ는 침묵이었다.

피아간 소총으로도 관통할 수 있는 북한 초소와 실 거리로 불과 2km 남짓한 이 곳 에서, 우리들의 깃발을 들고 있는 육군12사단의 을지 대대 병사들에게 국민들은 이런 말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들, 병사들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려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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