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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주례를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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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0.15 10: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주례를 선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을 반추하는 일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헐렁한 나잇값, 그래도 마냥 청춘인 양”
 
10월은 1년 중 결혼이 가장 많은 달이다. 청첩장이 겹쳐, 휴일마다 분주하다. 
 
결혼문화가 참 많이 변했다. 집 마당, 마을 회관에서 벌이던 국수 잔치가 웨딩홀, 웨딩컨벤션, 호텔 뷔페로 옮겨졌다.
 
결혼식은 두 남녀의 독점적·배타적 관계를 사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의식이다. 기초적인 생활단위인 가정을 이루고, 종족보존의 기능도 아울러 가진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혼인신고를 하면 부부관계는 성립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축복을 받기 위해 엄숙한 절차의 혼례를 진행한다.
 
결혼식에 주례가 있다. 예식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우리 전통결혼식에는 주례가 없었다. 주례는 기독교 문화에서 건너왔다. 결혼은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대리했다. 세속적 주례는 일반인이 맡는다. 흔히 가까운 친지, 은사, 직장 상사, 유명 인사가 맡는다. 자격증은 없다. 주례를 호칭할 때는 ‘선생님’을 붙인다. 주례 선생님이다. 주례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 덕망이 있고, 진심어린 축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엄숙하면서도 생기가 있어야 한다. 각박해지면서 표면적인 관계가 많아, 지속적인 교류를 한 합당한 주례 선생님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한때 요란하던 정치인들의 주례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주례가 누구인지는 결혼식장에 가 보아야 안다.
 
결혼식은 인스턴트식이다. 촛불점화, 신랑신부 입장, 맞절, 혼인서약, 성혼선언문 낭독, 주례사, 축가, 부모님과 내빈께 인사, 행진, 사진촬영, 폐백, 피로연…. 결혼식 풍경은 천편일률적인 것 같지만, 각기 다르다. 축의금 접수하는 젊은이들이 한자 이름을 못 읽어 쩔쩔 맨다. 봉투를 여러 개 모아온 사람도 있다. 얼굴 도장 찍고, 우르르 밥 먹으러 가기도 한다. 신랑이 구두를 신은 채 넙죽 큰절을 하질 않나, 춤을 추질 않나. 만세삼창을 시키기도 한다. 하객들에게는 숱한 행사 중 하나지만, 당사자에게는 특별한 날임에 틀림없다. 폭죽 터트리는 것을 막은 것은 잘한 일이다.
 
주례는 빠른 시간 안에 식을 마치도록 하는 게 최고다. 주례사는 훌륭한 덕담도 많지만, 대부분 경청하지 않는다. 주례가 훈계하는 내내 신랑 신부는 서서 벌 받는다. 번쩍거리는 카메라 플래시도 땀나게 한다. 사회자와 호흡 맞추기도, 바쁘다. 사회자와 주례가 서로 독식하려다가 웃음바다를 만든다. 사회자가 주례를 넘보기도 하고, 주례가 사회자를 제치기도 한다.
 
주례문화도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 여성주례도 등장한다. 전문주례도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도 있다. 신랑 신부가 편지를 읽고, 부모가 축사를 한다. 신랑이 축가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주례가 결혼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극구 사양하다가, 외람되이 외삼촌이 주례를 섰다. 조카에게 당부했다.
 
첫째, 꼭 자식을 낳아라. 아들 딸 가리지 말고 생기는 대로 낳고 기를 것. 자식을 낳는 것이 효도요, 충성하는 첫 번째 덕목이다.
 
둘째, 무조건 편들어 주어라. 삭막한 세상, 내 편 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서로 상장 배경과 가치관이 다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거라. 무조건 “당신이 옳아, 당신이 잘했어.” 감싸 주거라. 둘이 한편이 되어, 하늘·땅·산·구름·바다를 다 너희 편으로 만들거라.
 
셋째,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 하루 이상 고민하지 마라.기쁨도 지나가고, 아픔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믿자. 웃자. 당당하게 살자. 신혼여행 잘 갔다 오거라. 
 
외삼촌 주례는 단순히 성혼선언을 하고, 주례사를 낭독하는 차원이 아니다. ‘주례를 서다’로 짧게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식을 몇 낳는지, 조건 없이 편들어 주고 있는지, 당당하게 웃고 사는지, 지켜볼 게다. 두 사람의 앞날, 나아가서는 두 집안의 화목을 가늠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어떻게 사는지 물어도 보고, 가끔씩 살펴 볼 요량이다.  
 
내 결혼식이 떠오른다. 나는 나의 주례 선생님을 몇 번이나 찾아뵈었는가? 주례를 선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을 반추하는 일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헐렁한 나잇값, 그래도 마냥 청춘인 양, 시월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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