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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간호사의 이름으로 살아가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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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0.25 16: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 영 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추석날 제자들의 명절 인사가 그리 싫지 않는 게 나도 어지간히 나이가 되었나 보다, “명절인데 근무니?”, “네, 교수님, 신규라 윗년 차 샘들은 쉬시고 저희들은 병원을 지킵니다”, “동생이 많이 보고 싶어 하겠네”, “그래도, 언감생심 휴가 신청은 감히 꿈도 못 꾸죠. 하하하”, “아버지 제사인데, 어머니께서도 많이 섭섭해 하시겠구나, 힘내, 그리고 집에 전화 드리고”, “….” 대답이 없다. 마음속으로 우는 것 같다. 병원에 근무하는 제자의 아버지는 제자가 3살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어머니께서 두 형제를 키우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고 장남인 제자는 취업 이유로 남학생이지만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어머니 고생을 덜어 드리고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전공학과를 바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신규일 때도 그리하였던 것 같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69달러였다. 보릿고개가 어색하지 않는 시 대에 정부는 외화를 벌어들일 방안을 찾다가 1963년 12월에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한국의 젊은이 1만9000 명이 외화 벌이를 위해 서독으로 떠났다. 간호사들을 포함한 서독 파견 근로자들의 노력은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신화를 이루는 씨앗이 되었고, 대부분 국민들이 인정하는 감동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편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한국의 간호사들은 오빠 공부를 위해서 간호학과를 선택하였고, 또는 남동생 공부를 위해서 본인의 미래를 포기하고 간호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배, 동료 간호사들은 백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병원 현장을 선택하였다. 돌이켜보면 간호사의 역사는 이렇듯 숭고하였으나 슬펐고, 애절하지만 존경스럽지 아니한가. 현재 우리나라 대학졸업자의 56.2%만이 취업에 성공한다. 이러한 이유로 간호학과 지원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직률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간호사는 제 적성이 아닌가 봅니다. 그냥 좀 쉬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려 합니다.” 헐~, 우째 이런 일이, 발령 받은 지 3주 만에 사직이라니.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가 왠지 불길하다고 느껴지더니만. 작년 이맘때 “병원에 제 뼈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해서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될 겁니다” 하더니만, 내가 가르친 내 제자들이 다들 왜 이럴까? 갑자기 다리가 휘청거리고 뒷목이 뻐근해져 온다. 벌써 3명이 사직했다. 참으로 안타깝다. 간호사의 유니폼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환자 곁에 있을 때인데, 너희들의 간호정신이 많이 부족하구나. 임상의 배고픔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구나!

우리나라 임상간호사 수는 대략적으로 25만에서 30만 정도이며, 신규간호사 채용률은 이중 25%정도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최근 발간한 자료집을 보면 2014년 현재 한국의 면허등록 간호사 수는 32만3701명이며 이 가운데 남자는 7443명으로 전체 간호사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2013년 기준 전국 평균 13.9%이며 일부 병원에서는 24%정도로 10명 중 3명 정도가 이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규간호사 배출은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진정 아픈 이들의 곁을 지키고자하는 임상 간호사는 감소 추세다. 올 하반기 일반대학 졸업예정자들의 공채시즌이 시작됐다. 대기업은 저마다 스펙보다는 ‘능력’ 중심의 인력채용을 강조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은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 면접에서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려고 고민이 많다. 게다가 좁아진 취업문 탓에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그놈의 능력’이란 게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학벌 몇 점, 스펙 몇 점, 외국어 능력 몇 점 등과 같이 항목별로 점수를 구체화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다. 결국 취업준비생들은 제각기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높은 학점을 취득하고 더 높은 TOEIC점수를 따고 더 긴 인턴을 거치고 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한다. 여기에 감동적인 자기소개서 작성과 자신감 있는 면접 태도는 필수다. 하지만 간호학과 졸업생은 국가고시 합격으로 취업의 기본이 보장되는 학과이다.

헌데 임상현장을 떠나는 간호사는 스스로 반성해야 된다고 본다. 간호사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내가 기억하는 가장 화려했던 최고의 임상 메뉴는 환자분들의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이었고, 가장 미안하고 감추고 싶었던 메뉴는 업무량이 너무 많아 “잠시간 기다려주십시오”라는 구차한 변명이었다. 대학병원일수록 경력자들의 이직률은 점점 늘어나고 환자들의 심화된 요구도 역시 점점 증가되고 있다. 많이 힘들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름은 그저 간호사이다. 조건 없이 한쪽 어깨를 내어 주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주워 담을 여유조차 없지만, 병실 곳곳에서 간호사들의 발자국 소리에숨 죽이고 기다리는 그들이 환자들이 있기에,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최고의 간호사보다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나의 후배간호사가 되어주면 안 되겠니!

허 영 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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