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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회갑(回甲)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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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1.11 20:1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살아 있는 자는 누구나 회갑을 맞는다. 회갑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예순한 살을 이른다. 금년은 을미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회갑을 맞았다.

나이 계산이 헷갈려 회갑이 언제인지 종종 묻는다. 우리 나이 60세(만 59세)는 육순(六旬), 61세(만 60세)는 회갑(回甲), 62세(만 61세)는 진갑(進甲)이다. 환갑(還甲)은 회갑과 같은 말이다.

어른 생신 잔치를 통틀어 수연(壽宴)이라고 한다. 옛 회갑 잔치는 성대했다. 자손들이 장수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이웃들을 초대하여 기념했다. 질병과 전쟁으로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으므로 회갑만 지나도 오래 살았다고 여겨 온 집안이 모여 며칠씩 잔치를 열고 기뻐했다. 마당에 차일을 치고, 헛간에까지 자리를 마련했다. 안방에 병풍을 치고 높이 40cm나 되는 원통형으로 쌓아올린 교자상을 진설하고, 풍악이 요란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회갑자가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재롱을 부려 부모님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다.

회갑잔치는 직계자손들에 의해 베풀어진다. 비용이 막대하여, 부담스럽기도 했다. 특수집단에서는 지도자나 두목의 추종자들이 베푼다. 학계에서는 제자들이, 예능계나 기술계나 종교계에서는 문하생들이 모시기도 한다. 직장이나 동호회에서는 그해 회갑을 맞은 사람들을 모아 집단 회갑연을 열기도 한다.

지금은 회갑을 크게 챙기지 않는다. 아예 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지낸다. 백일, 돌, 회갑연을 전문적으로 하는 음식점이 성업중이다. 모조 고임상도 비치해 놓고, 현수막도 걸어준다.

평균연령이 높아졌다. 61세는 노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 고령자의 연령이 55세에서 60세로 바뀌더니, 65세로 늘었다. 지하철 경로석에 앉기가 민망하다. 평균연령이 80세에 가깝고 기대수명이 85세라고 한다. 100세 시대 노후설계를 이야기하더니, 120세 건강보장보험을 광고한다. 어쩌자는 것인가! 삶, 욕망이 겁난다.

공자는 60세에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나이 예순에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말이든 들으면 이해가 되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왜 사는가? 뚜렷한 지향이 없는 모호한 삶, 변변치 못하고 옹졸한 내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다.

생존에 급급하여 점수 잘 따는 법, 돈 버는 법, 보신하는 법에는 귀를 쫑긋 세웠지만, 등한시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리저리 재지 않고 성실하게 일관된 삶을 살고 싶었다.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평범함 속에서 비범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노년 유의사항을 전달받는다.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함께 놀아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끽하라. 삶은 철학으로 대체할 수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적다해도, 그 자체를 즐겨라. 일일이 따지지 마라. 사생결단 내려고 하지 마라. 7할만 이루면 만족하고, 조금은 베풀며 살아라. 일을 줄여라. 일은 만들면 자꾸 생기고, 줄이면 줄어든다(生事事生 省事事省). 욕심도 그렇다. 헛된 욕심, 쓸데없는 걱정을 버려라. 병없이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면, 하늘이 내려준 나이를 다 살았다는 뜻으로 천수(天壽)를 누렸다고 했다. 다시 육십갑자가 펼쳐져 진행한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天眞無垢)하게 살아라.

인연은 소중하다. 불교에서는 눈깜짝할 사이를 ‘찰나’라고 하고, 숨 한번 쉬는 시간을 ‘순식간’이라고 한다. 반면에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겁’이라고 한다(힌두교에서는 43억 2000만 년을 한 겁이라고 한다).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50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이웃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억 겁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한다.

반려자와의 인연, 인연의 1순위는 배우자다. 회혼례(回婚禮)가 있다. 결혼한 지 60년되는 해, 결혼한 날짜에 신랑과 신부처럼 꾸미고 혼인예식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그러나, 직계 자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죽은 사람이 있으면 회혼잔치는 하지 않는 법이다. 모두가 회혼례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예전에는 70살 사는 이가 드물어 고희(古稀: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지천명(知天命)을 하지 못하고 이순(耳順)도 못하는데, 70세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할 수 있을까?

장수인생이 축복만은 아니다. 회갑이 완생(完生)은 아니다. 자식도 시원찮고, 돈도 없고, 외롭고, 서러운 노년이 늘어난다.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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