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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백제 관광벨트 만들자 (1)

천년 망각의 恨 뒤안길에 사비성이 꽃 새벽처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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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4.29 13:46
  • 기자명 By. 유영배 기자

 
-공주~부여~논산~익산 연계 백제 관광단지 벨트 조성 서둘러야

[충청신문=대전] 유영배 기자 = 공주~부여~논산~익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제관광단지 벨트조성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찬란한 역사와 크고 작은 유적지가 산재한 백제 왕도 부여를 기점으로 주변 지역 관광지를 연계하는 대단위 개발을 통해 유구한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재조명하자는 취지다. 계백장군의 나당 연합군을 맞아 장렬히 전사한 논산 황산벌 과 최근 백제왕도의 유적지 고증과 함께 롯데 그룹 투자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여, 무령왕릉 등 크고 작은 유적지와 유물이 비치된 공주 익산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본지가 창간호에 수필가이자 예촌문화벤처 강명수 대표의 역사기행을 통해 '잊혀진 백제, 깨어난 왕국을 찾아서' 라는 슬로건 아래 이를 본격 여론화시키고 있는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여 김남현 기자, 논산 백대현 기자의 공동 현지 밀착취재를 통해 백제권 관광벨트 조성의 허와 실을 점검해 본다.<편집자 주>

 
▲잊혀진 백제, 깨어난 왕국을 찾아서

-100여년전 천하 가른 승부 패자 역사 현재까지 이어져

-찬란한 신라 문화권에 비해 제 빛을 찾지 못했던 백제,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부활

년 사찰의 가람 같은 고요한 땅에 단지가 솟아 올랐다. 백제문화권 새 역사의 시작이었다. 점점이 들어선 백제 문화단지라는 이 하드웨어의 위용은 천년의 업화를 누른 옥색 새벽 같은 야심찬 빛이었다.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혼곤과 시름을 딛고 천년 망각의 막을 내리며 사비성이 꽃 새벽처럼 부활한 것이다.

신라문화권인 경주는 일본의 교토처럼, 중국의 시안같이 대한민국, 한 국가의 문화 심장부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다. 경주시 석굴암과 불국사가 8세기 고대 신라인들의 예술과 조영한 불교 건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고대 불교예술의 정수로, 세인들로 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일찍이 등재되고 보문단지 조성으로 신라문화권의 영달은 가속화 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유네스코 지정을 받은 양동마을 관광객들이 2005년 대비 5년 동안 내국인이 63%, 외국인은 무려 340%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공주와 부여로 이어지는 백제권을 여행하면서, 경주지방 곳곳에서 보이는 연초록빛 잔디가 융단처럼 조성된 왕릉과 아름다운 탑과 분황사, 첨성대 등의 진기한 국보들을 떠올리게 된다.

 
천여년 전, 삼국시대 국가들의 명운을 잠시 짚어보자.

과거 백제인들은 주변 국가에 비해, 결코 빠지지 않은 탁월한 문화와 지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과연 욕심없이 살아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1300여년이 지난 후에도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조용하고 아담하고 조촐한 동네가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담하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지, 초라하다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백제인들에게 특별한 욕망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평소 이곳을 여행 하면서 고대 백제인들, 그들의 존재는 무언가 詩적이지 아닌가 생각해 왔다. 그것은 온순하고 내적인 성향이라는 느낌이다.

년 사직을 돌아보며 적확히 표현하자면 이 나라가 한을 가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찌 없을까 싶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1300여년 전 당시, 천하가 갈린 승부의 결과로 인식 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2015년 공주의 무령왕릉, 공산성으로 시작된 이 역사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능산리 고분군, 부소산성에 이어 익산의 미륵탑사지까지 백제 역사유적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마침내 등재 되었다.

도시와 대륙과 산을 지나며 기행서를 쓰는 여행가로서, 잃어버린 왕국을 이제 막 깨운 변화를 조명하려,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는 깨어져도 산하는 그대로 인데.

성에 봄이 찾아오니 초목은 우거지고.

슬픈 시절을 느끼니 꽃마저 눈물을 쏟고.

한이 서린 이별에 하늘의 새도 놀라네.

전쟁의 봉화가 삼월에도 이어지니,

가족의 소식은 만금에 어디 비하리.

흰머리는 점점 짧아지어

이제 비녀조차 꽃을 수 없겠구나.

- 춘망 두보 -

 

안녹산의 난으로 적진에서 영어의 몸이 된 두보가 노래한 시, 춘망이다. 가엾은 왕국에서나 음미해 볼 슬픈 작품이다.

백제가 침잠된 후 1360년. 그러나 힘이 있으면 다시 살아남으리라.

상식이 있다면 아니 상식보다 훨씬 큰, 둔도가 아닌 백제군의 예도가 지금 다시 살아남으려고 이 땅을 시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혹자는 신라하면 통일이라는 이미지가, 고구려 하면 광개토대왕의 용맹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하면 멸망,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최후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잠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아주 허망한 소리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세계 모든 제국들의 멸망이다.

고구려의 용맹? 백제의 의자왕처럼 의지적인 인물이 어디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도 한때 맹주였다. 한때 신라의 중앙부까지 침투해 수도 경주까지 함락을 꿈꾸었던 야심찬 군주였다.

▲논산 황산벌의 계백

 
 

피난의 애환을 노래한 두보의 시 춘망을 떠올리며 떠난 백제의 길, 제일 먼저 도달한 논산시 부적면 탑정호 근처에 백제 군사 박물관이 위엄있게 세워져 있다.

이곳은 2005년 개관, 계백의 충절과 예학과 전통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물과 기록화 등이 전시된 박물관이다.

제1전시관은 백제군의 군사 활동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백제군의 전쟁역사 백제성을 모형화해 입체 전시했다. 제2전시관은 백제군의 행렬모형과 실물크기의 희장, 무기, 복식을 복원하고 계백의 영상과 기록화도 볼 수 있어 장군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다.

호곡공원은 수천만원을 호가 하는 듯한 조선 솔나무들이 산재된 산림 숲이다.

이만한 정경의 공원을 가진 유적지도 드물 정도로 논산시에서 정성을 들여 만든 회심의 장소다.

계백의 묘와 함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충장사에 있는 계백의 표준영정이 이채롭다. 인근 충혼 공원에 펼쳐진 백제의 영걸들의 넋이 떠도는 듯 했다.

년 7월 9일.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진 전투 황산벌. 삼국의 운명은 몰론 동아시아 전체 구도가 바뀌는 절대 절명의 전투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막강했던 당은 고구려와의 요동 전투에서 크게 패하자 급기야 신라의 제안에 따라, 선 백제 멸망 후 고구려 멸망이라는 야심을 가지고 드디어 660년, 13여만의 대군을 이끌고 지금의 인천 부근인 덕문도에 접근하였다.

무려 1천㎞ 바닷길을 건너온 당 군사는 금강하류 기벌포에 상륙하였고 육상에서는 신라군이 남천정에서 탄현 쪽으로 진격하는 양동작전을 벌였다.

성충과 흥수 같은 선견지명 있는 백제 충신들이 진언한 해안 진지나, 사비성 이중 방어선 구축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신라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려오고 있었다.

황산벌은 신라군이 반드시 그 곳을 돌파해야 할 요충로이기에 양측 다 운명의 장소였다. 황산벌 전투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재편을 가르는 전투였다. 백제 멸망 후 고구려의 멸망도 곧 이어졌고 당과 신라의 세력싸움이 벌어진 것도, 이 전투에서의 승패가 낳은 결과들이다.

넓은 들판인 황산벌 벌판에서 계백이 서 있었을 한 편의 진지를 바라보았다.

번의 승전 후, 이제 5번째 부딪치는 전투에서, 장군은 벌판 건너 울창한 숲 목에 드리운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를 애써 애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하들의 호곡소리와 적군의 흙 팔마 소리 따위는 듣지도 않았으며 번뜩이는 인광을 떨치며 평정한 심사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난세에 호국할 일체의 힘을 상실했을 때 가지는 도덕 같은 것은, 그에게는 이미 낡은 유산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오로지 적을 뚫어질듯이 바라보듯, 폐부를 찌를 예리한 눈으로 신라군을 응시할 뿐이었다.

계백, 그 자신이 바로 황산벌의 작전이고 이 벌판보다 몇 곱절 큰 위대한 거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불같은 의기조차도 사랑하는 부하들의 노호에 묻혀 사라질 즈음, 그 어떤 것 보다 죽음을 택한 백제군 결사대들의 상쾌한 도박은 거의 주사위가 던져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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