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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백제 관광벨트 만들자 (2)

은거의 땅, 고요한 제국이 후예들의 손끝에서 開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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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4.29 14:03
  • 기자명 By. 유영배 기자

▲부여 백제 금동 대향로

 

구 부여 국립 박물관 건물은 김수근 이라는 당대 최고의 천재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페인트가 벗겨진 약간은 위축된 모습으로 현재 문화재 사업소 사무실로 쓰인다. 미학적으로 멋진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이 근대 건축물은 백제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선사할 가치가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현 박물관 못지않게 이 건물은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아주 훌륭한 박물관 전형으로 생각한다.

부소산 언저리 녹음 속에 있는 지리적 배치와 주변풍치의 조화도 기가 막힌다.

90여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이어진 전통의 부여국립 박물관에서, 만여 소장유물 중 백제 금동 대향로를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수 십만점의 소장품 중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최고의 상징이 되듯, 여기에서는 가장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하게 보관된 것이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대향로다.

불교의 사상적 복합성까지 깃들인 백제국 최고의 걸작이다. 국보인 금동미륵 보살 반가사유상은 서울중앙 박물관에서 상시로 전시되고 있다. 선수도 자세로, 담담하고 신비스러운 미소로 중생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 이같은 불상이 부여 같은 고도에 소장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근무자에게 몇몇 질문을 해보았다.

조용한 시간에 은은한 조명 아래 비추어진 담박한 이 불상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지방 박물관에서는 못 보는 아쉬움 때문에 애매한 투정도 해보았다.

지방 박물관들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모든 것이 수도중심 행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불상에서 은근한 부처의 염원을 역력히 느껴보고 싶은 나그네의 미련이다.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룬다.

 
▲부소산

사람들은 흙을 밟아 보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부소산은 흙으로 된 육산이기에 이 길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속세의 모든 것을 벗어나 오로지 무언가를 향해 갈구하는 구도의 순례 같은, 내 영혼만이 존재하는 길을 걷는다면,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길. 부소산이 바로 그 작은 길을 품고 있다.

전혀 광활하지 않으며 미지의 길이며 지평선 같은 신비스러움이 있다. 백마강에 허리를 휘어 감겨 있는 부소는 요염하기 보다는 정숙한 여체의 산이다.

충절의 의인을 모신 삼충사에 들어서며 푸른 잎에 눈을 돌렸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망 속에 성충은 수많은 상념 속에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집권 초기에는 그렇게 의기는 강했던 주군이었고 비주류였던 자신들을 파격적으로 등용시킨 영민하고 고마웠던 주군. 그러나 이제 시대를 못 내다본 임금을 원망하며, 흥수는 서있을 인내조차 없는 조국의 빨간 핏빛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 이다.

이와 같이 사물을 깊이 보는 전략가, 안과 밖, 좌우를 통찰할 줄 아는 성충, 흥수 같은 가신이 몇명만 더 있었어도 그 짧은 기간 속에 사라진 조국의 황망한 멸망은 결코 없었으리라.

이제 막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사자루를 거쳐 고란사에 다다랐다. 그렇게 2시간여를 천천히, 지극히 천천히 돌았다.

과거 삼천 궁녀들이 평화로운 시대, 이러한 땅을 밟고 거닐며 내쉬는 호흡은 얼마나 태연스러운 안정이었을까.

그리고 왕의 광휘는 항상 눈부시었을 것이다. 그들은 왕의 운명체에 합일 되었고 갈망하였을 것이다.

고란사에서 목을 축인 후 좁은 길을 내려가 낙화암 벼랑에 이르렀는데, 너무 큰 것만 보아온 현대인들에게는 작은 강, 작은 벼랑이다. 이 벼랑에서 왕국은 지난 700년 동안 그 많은 것들을 사유했지만, 그 날 그 귀한 이들을 잃었다.

그녀들은 저승에서 왕과의 종용한 시간을 보낼 것을 기원하면서 육체와 정신을 던졌다.

내 머릿속은 백제의 비운과 방종의 상징인 삼천궁녀의 숫자, 그 실체의 허구를 조정하기보다 자유를 잃은 삶의 방식을 절망하며 `강 속에 몸을 던져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신선한 사연만을 생각했다.

낙화암에서 흐르는 백마강을 보자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화암, 백마강에 온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자 감성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 중에는 백제의 아이콘인 계백과 삼천궁녀 그리고 의자왕에게 특별한 연민이 솟아났다.

햇살이 눈부시고 고란초 향기가 허공에 퍼지는 벼랑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꽃들의 공허한 메아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녀들이 후세인들에게 점철된 방탕과 욕정의 아이콘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삼천 궁녀들은 낙화함으로서, 어느 누구도 백제인 들을 굴복 시킬 수가 없다며 왕국의 예찬을 본능적으로 발휘 한 것이리라.

 
▲정림사지, 익산 미륵사 탑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완성시키는 것은 불상이고 불법의 세계를 현실 세계에 증거하는 건축물은 사찰이다.

그리고 은근한 아름다움으로 은은히 생명을 다해 바치는 절실한 희구는 탑으로 창조되었다.

정림사지와 금마의 미륵사 탑, 이 두 탑은 백제만이 가진 미와 기술로 그 정형을 보여주며 그 탑이 지닌 염원을 역력히 느끼게 하는 건축물이다.

백제 문화단지의 사비성 옆에 세워진 목조탑의 기술은 백제인 아비지로 하여금 신라의 황룡사 9층탑을 구축하는 대담함까지 구현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창조물인 석탑으로 발전하는 혁신을 이룬다.

정림사지를 눈 내릴 때, 비가 올 때, 춘추의 계절마다 돌아보며 균형잡힌 사지의 감각적인 특색을 지켜보았다.

에누리 없이 소쇄원의 미에 버금갈 정도로 매력적인 것은 여전히 연약하고 날씬한 오층석탑이 정중앙에 서있기 때문이다.

흙의 나라에서 목조에서 석탑으로, 돌 한 덩어리까지 세세하게 추상하고 발휘된 위대한 백제의 뛰어난 건축이 과연 지금까지 이어지는지, 지난 겨울 찾아간 익산의 미륵사지 복원장소에서 백제후예들이 징으로 조각하는 소리가 자못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지나간 1000여년의 세월은 생략되었지만, 그들은 무거운 돌 한 덩어리를 척척 쌓아올리고 난이도 높은 기법도 사용을 할 것이며, 그리하여 세련된 미륵탑을 복원하여 지난날 백제탑의 황금시대를 열 것이다.

다시 논산길과 접경인 부여 인근 능산리 고분을 찾아 왕릉들을 돌아 보았다.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한 사비 왕족들의 능과 부여의 관문 로타리에 세워진 백제 최대 국보인 금동대향로도 바로 능산리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이미 정지 작업이 끝난 능산리에 사지가 제대로 조성된다면 정림사지 이상으로 부여의 큰 자원이 될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예산이 확보돼 사지가 조성되기를 기원해본다.

유치원생들이 제주 오름같이 부드러운 왕릉 능선을 끼고 돌아다닌다. 왕릉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이 지역 아이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의자왕의 비석과 북망산에서 퍼온 흙이 묻힌 가묘와 단이 왕릉과 사지정지를 하고 있는 전시관 사이 길에 자리 잡고 있다.

의자왕은 싸움에 강했다. 그러나 싸움은 어려운 것. 그의 인생도 어려웠다. 해동증자라 할 만큼 효자였던 그는 37세 늦게 태자로 책봉된 후, 무왕의 죽음이후 641년에 왕으로 즉위, 이때 나이가 46세.

이렇게 늦게 왕위로 오른 것을 보면, 즉위까지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있었을지 짐작을 하게 된다.

공주에서 부여, 논산 땅을 여행하면서 그는 비범하지는 않을지언정, 그리 범속한 사람으로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세계는 그리 평화가 많지 않았다. 즉위 초기 승전 후에 갖는 자만감과 허무감에 빠져, 국가 관리의 맹점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 건강하지 않은 운명이 어디선가 자신을 잡고 백제를 잡고 있었다.

즉위 15년이 지난 후, 이미 이순이 넘은 그에게 야성은 몸 밖으로 나갔다.

삼천궁녀를 품에 안은 왕은 사물을 한쪽으로만 본 것이고, 그 때 백제 고원의 해는 기울어진 것이다.

중국 땅, 혀를 날름거리며 찾아오는 죽음을 앞두며, 패망이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망상을 하였을까.

영겁의 세월 속에 핀 벚꽃망울을 보며,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비탄의 감회에 사로잡혔을까.

타국에서의 임종 직전, 분명히 조국의 파란 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그가 궁남지를 떠올리던 바로 그 순간, 수면 저쪽, 사비성 남쪽 푸른 물 내음이 물씬하게 풍겨오고 사랑했던 그리운 모습들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연꽃이 보석처럼 띄어진 연못 둘레를 돌고 있는 젊은 무왕 서동왕자의 손을 꼭 잡은 선화공주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태어날 때 가졌던, 어머니 선화공주의 환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태어난 것이, 그다지 매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의자왕의 어머니가 선화공주라는 설화를 믿고 싶은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사유임을 밝힌다>

▲ 수필가·예촌문화벤처 대표 강명수
▲“스토리·콘텐츠 개발, ‘백제문화단지’ 하드웨어에 보석같은 소프트웨어 장착되길”

10년 전, 오카리노의 달인이라는 일본의 여성 주자 혼야 미카코의 연주를 공주문예회관에서 들었다. 연주날 새벽, 그녀는 맨발로 무령왕릉 앞에서 청아한 소리를 흘렸다고 말했다. 당시 공주나 부여는 작은 시골 도시로, 이만한 세계적인 예술가가 멀리 찾아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날 동틀 무렵 여명의 연주는, 아스카문화를 비롯한 수준 높은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을 유지시킨 백제인들에 대한 경의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되었다.

이번에 돌아본 백제역사의 길에는 예전과 달리 많은 관광객들이 보였다.

사비성을 비롯하여 왕궁전체를 완벽히 재현시키고, 실제 5000돈의 순금이 들어있는 금탑,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4년제 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이 들어선 백제 문화단지는 경쟁력 높은 견고한 하드웨어다. 지하1층 지상10층, 310개 객실규모의 호텔급 콘도미니엄을 비롯하여 아울렛, 아쿠아풀, 스카이힐 부여CC등의 쇼핑센터, 레저시설과 역사와 문화를 아름답게 복원한 역사 재현촌 등을 갖춘 새로운 개념의 부여 롯데리조트 역시 백제문화단지의 우아한 하드웨어다.

2010년, 무려 8000여억원을 들여, 100만평의 대지에 대 백제 문화단지를 완공시킨 중앙정부문화재청, 지방자치정부, 민간기업의 투자는 신라문화권에 버금가는 한 축을 인정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전폭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던 신라문화권에 비해, 너무나 낙후 되어 있는 백제문화권에 대해서 절대적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계백이라는 백제의 마지막 패장이 후세에 꾸준히 회자되는 것은 무엇일까?용기, 기백, 비장, 결사대, 탁월한 전략가. 나약한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멋진 맨탈을 모두 갖춘 장군만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롯데그룹이 빛나는 안목으로 더 한층 다양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개발해 백제문화단지라는 하드웨어에 보석 같은 소프트웨어가 장착되기를 기대해본다. 창조적인 민간 기업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자본주의의 순리이고 문화도 시장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백제문화를 다시 세우기 시작한 롯데 같은 기업이, 현대판 백제의 후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잊혀졌던 나라, 은거의 땅에서 1400년 만에 백제 왕국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유영배 기자 dailycc@dailycc.net

-자료 제공

백제문화단지 학예연구사 이강복 팀장

부여군청 관광 진흥과 문혜진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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