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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시장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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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5.02 15: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낡고 좁다란 길을 따라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조차 낯설지 않고 편하다. 누가 나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닌데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웬만하면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다. 시간의 제약도 두지 않으려 한다. 볼 것, 들을 것 까지 담아올 커다란 마음의 바구니를 준비해간다. 가슴에 지녔으니 전혀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재래시장에 가는 일은 새로운 자유이다. 
 
번듯하고 화려한 대형 매장에서 얻는 만족보다 이렇게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재래시장이 언제부터인가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 맛을 모르고 지내왔다. 
 
지금은 현대의 물결에 밀려난 상권을 말해주듯 오일장을 빼고는 한적한 편이다. 거기에 휩쓸려 느린 걸음을 택하기로 했다. 촘촘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으며 시간 보내는 일이 또 다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좋다. 익숙했던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게 되어 그렇다. 
 
거리에서 묻어나오는 정경들조차 왠지 친근하다. 스치는 사람들의 눈망울에서도, 부딪히는 어깨에서도 어색함은 찾을 수 없다. 대화는 오고가지 않지만 외면하지도 않는다. 
 
삶이 꿈틀대는 곳, 가장 가까운 현실의 거울을 들이댈 수 있는 곳에서 오늘도 한참동안 서성인다.
 
그곳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발견해낼 수 있다. 다닥다닥 이어지는 좌판에서 때에 따른 푸성귀들이 가장 먼저 구미를 당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산골, 어느 바다에서 온 것들인지는 몰라도 또 다른 먹 거리들이 눈길을 빼앗아 멈추게 한다. 
 
이렇게 눈으로 담아오기에도 편하고 느린 걸음도 재촉 받지 않을 재래시장에 가는 일은 한 박자 더디게 사는 나만의 여유이다.   
 
그곳은 덤이 있어서 좋다. 가격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래시장에 널려 있는 인심들이 그 이상을 보상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거부당하지 않는 흥정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어 갖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새댁 때부터 다녔던 길목에서 젊었던 상인들은 어느새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변해 버렸다. 열심히 살아온 모습들을 보며 오래된 자취를 발견하듯 숙연해진다. 
 
가끔씩 울적할 때에도 찾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시장바닥에 무늬처럼 나열되어 있다. 
 
어느 한 점 바라보며 위로를 얻는다. 벅차게 여겼던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으며 사방에 흩어 놓는다. 자질구레, 형형색색, 모두들 안고 가는 현실들이다. 그 중에서 내 삶의 몫을 인정한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새로운 각오를 쓸어 담는 일에 열중한다. 애지중지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갈등과 화합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생존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누구나 똑 같은 삶의 무게를 나누고 있는 현장이었다.
 
한 잔의 커피가 생각날 때에도 찾아간다. 딱히 기다림도 없건만 무작정 발길은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훈훈한 인심들이 손짓을 한다. 그저 의자 하나 건넬 만큼의 단골가게에 들어서면 고상한 커피숍이 부럽지 않다. 종이컵 안에 담겨오는 커피의 향에서조차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지나가고 있다. 귀마저 잔뜩 즐겁다. 
 
이제 그곳은 진화되고 있다. 주차장을 마련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시장보기 수월하도록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화의 물결에 부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렇게까지 나아지는 재래시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서로의 호흡이 얼마나 흐뭇한지 체험을 권하고 싶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보았다. 그렇게 세상은 평범한 듯, 조금은 소란한 듯, 깊은 의미를 전달하며 우리들 가까이에 있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양손에 들린 여러 가지의 것들도 무겁지가 않다. 넓고 환하게 정돈된 길을 걷기보다는 조금은 협소하고 분주해 보일지라도 충분한 여유가 있는 곳, 그곳이 재래시장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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