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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시대의 온갖 모순을 안고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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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9.05.28 17: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혁명가였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과 기득권과 허위의식에 끊임없이 저항해 온 반항적 지식인이었습니다. 저항가였습니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깨어지고, 피 흘리며 부서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기득권의 벽에 부딪치고 또 부딪쳤습니다.

우리사회는 철저히 이중적입니다. 남북만 분단된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의 분단국가입니다. 동서로 나눠져 있고,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져 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져 있고, 배운자와 못 배운자로 나눠져 있고, 빽 있는 사람과 빽 없는 사람으로 나눠져 있고,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으로 나눠져 있고, … 이것이 현실입니다.

혈연이 판을 칩니다. 지역주의가 통치의 근거입니다. 학연이 아니라 학벌 사회입니다. 여기에다 이젠 종교적 근본주의가 판을 칩니다. 그간의 근무인연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종교연(宗敎緣), 근무연(勤務緣),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우리사회에서는 처세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봉건사회적 풍조가 사회와 시대를 지배합니다. 이런 이중적 모순과 분열상은 어설픈 허위의식으로 감춰져 있습니다. 미봉으로 간신히 봉합돼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허위의식과 기망과 기득권을 결코 가만두지 못했습니다. 쇠종을 울려야 했던 전설 속의 새처럼, 머리를 부딪쳐 가며 온 몸으로 대들었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황혼녘에 울어댔습니다.

우리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고, 못 배운 비주류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와 소외된 자들의 공익을 위해 처절한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우리사회의 가장 극단적이고 강고한 모순과 함께 했습니다. 오로지 노무현 전 대통령 뿐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대의 모순을 끌어안고 용서와 관용을 부탁하며 꽃잎처럼 흩날렸습니다. 희생의 제의(祭儀)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부탁이니까 울지 마. 이게 우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야. 슬픔은 영원히 남는 거야. 난 이제 집에 가는 거라고.” 빈센트 반 고흐가 평생을 함께 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유언처럼 그랬습니다.

대통령은 당선된 순간 레임덕입니다. 취임 직후부터 지지율 하락에 시달립니다. 그 순간 다음 대통령은 누구인지에 대한 예측이 시작됩니다. 퇴임 직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 완벽하게 발가벗겨집니다. 마치 패배자의 무장해제처럼 취급받습니다. 동물적 인간도 못되는 상태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식물인간 상태로 취급받습니다. 헌법이 정한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장은 거짓입니다. 이런 헌법은 단 한 차례 지켜진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의 명예나 인격, 품성에 대한 극단적 반달리즘이 판을 칩니다. 부정을 통해 새로운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 필요가 생겨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헌정사적 전통에 더해 말초적이고 일극적인 권력지향형 인간들은 신임 대통령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들어 위험스런 권력구조를 형성합니다. 필요하다면 삼족을 멸해온 조선왕조실록 류의 사극이 은유적으로 재연됩니다. 끝없는 불안과 공포정치가 횡행합니다. 대통령제를 선택해온 1948년 이래 대한민국의 헌정사가 그래왔습니다. 특정 정권의 일이 아닙니다. 정권교체 여부와도 무관한 일입니다.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대통령사요, 헌정사입니다.

더 이상 이런 제도적 모순,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치권과 언론은 오로지 정치공학적 계산만이 난무합니다. 여건 야건 가릴 것 없습니다. 친이는 친이대로, 친박은 친박대로 그러하고, 미디어법에 목 매달고 있는 언론들도 각자의 계산에 여념이 없습니다. 뒤돌아서서 두들기는 전자계산기 소리가 곡성을 넘어 섭니다. 위험스런 행태는 또 다른 형식으로도 발현됩니다. ‘적의 적은 친구’인가요. ‘박사모’에게 손을 내미는 이도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에 반(反)하기도 합니다. 죽음 앞에 겸허해야 합니다. 잠시 미움의 정을 내려놓고 참아야 합니다. 가슴 속 뜨거운 불덩이를 순간 재워놓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정파적 대립을 이유로, 조문을 훼방 놓는 일,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는 일은 분명 관용의 정신에 배치됩니다. 국민장이라는 유족들의 결정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토록 대들고 따졌던 기득권 집단의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국가보안법식 발상입니다.

두려운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냉랭하게 되돌아서는 일입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모순과 허위의식에 발 담그고 사는 일입니다. 노무현 정신을 잊고 사는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맞서 싸우고자 했던 시대적 정신을 애써 외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노무현 정신을 새겨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토록 대들고 싸워왔던 시대적 모순이 무엇이었는지를 경건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좌선해야 합니다.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노무현 정신이 우리의 미래와 늘 동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무현 사상으로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이 꽃피우게 해야 합니다. 백화가 만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시대를 함께 했던 우리 시대의 우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슬픔은 산하에 가득합니다. 시시때때로 눈물은 앞을 가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보내드려야 합니다. 노무현 정신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말씀드려 편하게 떠나시도록 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의무일지 모르겠습니다.

험한 세상 이제 잊고, 한없는 평화로움으로 영면하십시오.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최재천/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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