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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양약은 효과가 빠른데 한약은 왜 효과가 느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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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5.10 13: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나 영 태 마음 쉼 한의원 원장

진료 하다보면 참으로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양약은 먹고 나면 바로 변화가 오고 효과도 빠른 것 같고 뭔가 느낌이 팍팍 오는데, 한약은 먹어도 그냥 그런 것 같고, 좋아지나? 나빠지나? 원장님이 좋아진다고 하니 좋아지나보다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거에요. 물론 한약도 효과가 굉장히 빠른 경우도 있고 양약 역시 복용해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양약과 한약은 처방을 조제함에 있어서 약리학적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경과와 결과가 다릅니다. 뭐가 맞고 틀리고가 아닌, 서로 다른 겁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집은 대가족입니다. 부모님, 저, 집사람, 그리고 아이 둘과 뱃속에 아이 하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7월이면 저도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이제 곧 애국자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술을 마시고 새벽 5시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게다가 현관 문을 열고 보니 아내가 팔짱을 끼고 식탁에 앉아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집사람에게 너무 미안하겠죠? 무언가 점수를 좀 따고 싶어요. 그래서 다음날 퇴근 후에 백화점에 들러서 예쁜 구두와 꽃다발을 사서 집사람에게 전해 줍니다. 분명 아내는 투덜투덜 하면서 그래도 속으로는 좋아할거에요, 그쵸? 

자, 지금 이 상황이 문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물론 저와 집사람만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좀 해본 분들은 약간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실거에요. 바로! 시어머니가 계십니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는 꽃다발이 놓여져 있고 외출을 하려 보니 현관에 못 보던 새 구두가 놓여져 있어요. 이때부터 이제 ‘아들내미 잘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스토리죠? 

제가 아내의 화(질병)를 잠재우기 위해 구두와 꽃다발(약)을 선물합니다. 그럼 아내의 화(질병)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게 됩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 서운할 수 있어요.(약리학적 부작용) 다음 날 아이들은 꽃다발을 보고 마냥 이쁘다고 좋아할 겁니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신발만 보면 집안에서 들고 뛰어 다닙니다. (예상치 못한 다른 장기의 반응이나 증상들의 변화) 만약 시어머니가 서운해 한다면 우리 아버지나 저는 밖에 나가서 시어머니를 위한 다른 선물을 사와야 할지도 모릅니다.(심각한 약리학적 부작용)

제가 어머니의 기분이나 다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아내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으로만 선물을 사는 것, 하나의 증상이나 하나의 변화를 위해서만 처방을 해서 쓰는 약을 single target drug 이라고 합니다. 이런 방식은 효과가 빠릅니다. 반응도 빠릅니다. 집사람이 선물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땡, 마음에 들면 오케이입니다. 그 자리에서 반응을 살필 수 있지요.부작용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시어머니의 반응도 고려하고 그로인한 아버지의 수고로움도 고려하고 다음 날 아이들도 더욱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여러 증상과 결과에 대해서 고려하고 조제하는 방식의 약을 multi target drug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생각이 많고 행동이 느리면 빠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어머니 반응 고려한다고 똑같은 선물을 사서 두분께 드리거나 만약에 아내의 맘에 드는 선물이 시어머니에게 가고 시어머니 마음에 드는 선물이 집사람에게 간다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너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각각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후자와 같이 처방하고 연구하는 방식의 약리학을 다중표적 약리학(multi-target pharmacology) 또는 네트워크 약리학(network pharmacology)이라 하기도 합니다. (「Nature」誌에 소개된 아시아 전통의학-Where West meets East, 김창업,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박사과정, 한의사) 

집사람은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다음날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면 결국 제가 더 힘들어지게 될 거에요. 불 보듯 뻔 하죠? 약을 쓰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이 난다고 해열제만 먹거나 염증이 있다고 항생제만 먹으면 안 되겠죠? 한약도 마찬가지에요. 살 뺀다고 ‘마황’을 대량 쓰거나, 기운 없다고 ‘인삼’만 오래 달여 먹으면 안 되겠죠? 이것이 single target drug 방식입니다. 가끔, 병원 갔더니 약을 한주먹 처방해준다고 투덜대며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두 개 약으로 강하게 처방해서 증상이 좋아져도 몸이 안 좋아지면 오히려 손해라고요. 알아서 잘 처방해주셨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일단 경과를 지켜봅니다. 한약도 그렇습니다. 먹어도 그냥 그런 것 같고 이거 좋아지려면 오래 먹어야 할 거 같은데 힘들어서 못 먹는다. 최대한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서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내 증상 경과에 대해서 이해가 가면 차근차근 해결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multi target drug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항생제나 해열제 등을 남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나 근래에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양약이 잘 안 듣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유는 여러 증상을 고려하여 몇 몇 drug을 배합하기 때문입니다. 약성이 강한 소수의 알약을 사용하기 보다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섞어 쓰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다중표적 약리학(multi-target pharmacology)적 관점으로 연구가 진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연구가 미진하고 단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약 중에 ‘경ㅇㅇㅇㅇ탕’이라는 처방이 있습니다. 이 처방을 구성하고 있는 약재가 27개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가감하다보면 30개는 훌쩍 넘어갑니다. 가끔 40개 이상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약재의 수가 많을 때 정확히 어떤 약리학적 기전을 통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체질을 고려하여 위의 ‘경ㅇㅇㅇㅇ탕’을 쓰면 참 잘 들어요. 의학은 재현성(再現性)이 중요한데, 좋아진다고 해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요. 단순히 체질적 소인으로 짐작하기에는 다듬어지지 못한 느낌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다 집어치우고, 적은 량의 약을 짧은 기간 동안 복용해서 증상을 최대한 좋아지게 만든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세상에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있습니까?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양약도 발전하고 있고 한약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로써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에서 각자 강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합쳐지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좋은 방향으로 같이 발전해나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나중에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수고로움으로 난치성 질환도 쉬이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나 영 태 마음 쉼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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