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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쌀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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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5.30 14: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김 기 자 수필가] 쌀밥 꽃이 활짝 피었다. 나뭇가지마다 걸려있는 하얀 꽃송이들이 소복소복 담긴 쌀밥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문득 아득한 옛날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변해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몰래 눈물샘이 움직인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다시 아이가 되어서 순수했던 풍경에 몸과 마음을 담그며 노닐고 싶어졌다. 이렇게 유년의 기억을 쌀밥 꽃에서 퍼 올릴 줄이야. 
 
사람들은 이 꽃을 이팝꽃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나는 쌀밥 꽃이라 무한정 부르고 싶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듯, 윤기까지 더하는 탐스런 꽃가지가 나무 전체를 꽃송이로 변모시켜 놓았으니 어찌 이런 생각을 마다하겠는가. 넋을 빼앗기는 순간이 어쩌면 잃어버린 것들의 새로운 생각, 다시 찾고 싶은 본래의 자아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쌀이 무척 귀했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대부분 보리밥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동네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을까. 
 
지금이야 보리쌀이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말 그 때는 보리밥이 싫기만 했다. 그나마 우리 집은 약간의 농토를 가졌기에 춘궁기는 면하고 살았었다. 
 
지금 생각할수록 우스웠던 기억은 끼니때마다 항상 눈의 각도를 좌우로 옮기며 남동생과 아버지의 하얀 쌀밥을 넘겨다보던 일들이다. 그만큼 아버지의 쌀밥이 부러웠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회상이다. 보리밥이든 쌀밥이든 그저 밥을 주식으로 먹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끈 적한 가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조금씩 여울져 오는 순간들이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한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 때 아버지의 밥그릇에 담겨있던 하얀 쌀밥은 지금 생각해도 넘을 수 없는 권위였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가족 간의 중요한 질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우선이셨으며 가정에서는 제왕과도 같은 분이기에 충분했다. 돌아볼수록 그런 아버지가 내게 계셨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쌀밥의 향기를 거슬러 오른다. 그 미묘한 맛에 어쩌면 심장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잊었던 내 아버지를 만나는 기쁨에 젖는다. 하얀 빛깔조차 어떤 위엄을 내포하며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진한 그리움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살아계실 때에 잘 해드리지 못했던 미안함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밥에 대한 정서, 오늘은 더 나아가서 밥으로 인해 빚어온 내 삶의 자취까지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다.
 
그 시절은 모든 것이 부족했다. 먹을거리며 입을 거리까지 대 부분 절약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밥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지금은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선호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밥상머리에서 제일 우선이던 아버지의 봉긋한 밥그릇은 아쉽게도 조금씩 멀어져 가는듯한 현실에 이르러 있다. 위엄과 권위의 자리마저 조금씩 밀려가고 있다.
 
입하 전후로 피어나는 꽃, 슬픈 전설이 있는 꽃, 요즘은 가로수가 되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 이름을 대신할 만큼 귀한 쌀밥 꽃에서 나는 상념에 잠긴다. 
 
그것은 아버지를 내 안에 다시 모셔 들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쌀밥과 아버지, 철없던 시절 내 안에 머물던 기억은 이제 꽃이 되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오늘이 있기까지 시대의 또 다른 버팀목이셨으며 드러나지 않는 사랑이셨다.
 
쌀이 흔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잠시라도 지금의 풍요와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리고 늘 감사하며 지내야 할 것 같다. 쌀밥에서 나오는 풍미처럼 온 몸과 마음이 넉넉해지리라 믿는다. 
 
쌀밥 꽃에서 찾은 아버지의 모습,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보는 우리들의 역사, 모든 것이 꽃처럼 하얀빛 사연으로 일렁이고 있다. 초여름 햇살 머리에 이고 이 팝 꽃 흐드러진 가로수 길을 걷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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