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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미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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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6.27 15: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김기자 수필가] TV 화면이 곧바로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노인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한 프로를 보게 되면서다. 등장인물은 우선 알기 쉽게 유명 연예인을 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나이가 삼사십 대의 사람들이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서 칠팔십 대의 나이로 살아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분장의 효과도 한 몫을 해내고 있었다. 호기심 보다는 왠지 무거운 심정이 되고 말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다. 바로 미래의 나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다가올 예측 불허의 시간 앞에 선다. 젊음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유독 느린 걸음을 얼비치며 어딘가를 향하는 내가 있다. 지나온 날들이 짧기만 한데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당혹스럽다. 고립감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피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저 적막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있을 뿐이다. 휘어진 등줄기에서조차 살아온 그림자가 여러 겹으로 매달려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다. 저녁노을과도 같고 가지 끝에서 힘겹게 남아있는 낙엽과도 같은 풍경이다.
 
이런 상상은 단지 외형으로 묻어나는 것들에 불과하다. 조금 더 내면으로 들어가노라면 두려움이 더 짙게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리 아등바등 살았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뜻하는 데로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렇게 인생무대에서 막바지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조금이라도 후회스러움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하는 마음 어쩔 수 없다. 무거움 보다는 가벼워지기 위한 자성의 시간이다.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듯 또 다른 아성의 집을 허물고자 조용히 결심한다. 
 
새로운 미래의 풍경을 찾아 떠난다. 지금의 내가 덜 자란 어른에서 충분히 자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지만 그래도 어디쯤에는 무의식의 자아가 항상 옳은 길로 인도해 주리라 믿고 싶다. 비록 육체가 쇠할지라도 올바른 지혜와 마지막 까지 자신의 몸을 가늠할 만큼 힘 있는 날들로 나머지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야만 홀가분함에 이르고 떠나는 길이 평탄하리라 믿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길을 가다가 쇼윈도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보며 잠깐 멈추어 선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료하지 않다. 투명한 거울 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해 낸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로 한다. 결코 합리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남아있는 미래의 시간들을 아껴 쓰는 일에 열정을 다하려 한다. 기대지 못하는 젊음을 허무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조급한 마음은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받아들인다. 그냥 자연스레 흐르는 물처럼 현실에 순응하리라.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시간과, 세상의 공의로움을 늦게라도 알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와 만나는 시간에 깊은 의미를 깨닫는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새로운 다짐도 함께 논한다. 친구를 만나듯 부모형제를 만나듯 평안을 꿈꾼다면 나머지 인생이 여유로울 것만 기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도록 애쓰고자 한다. 비록 육체는 쇠할지라도 지혜는 날로 자라나서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더 원한다면 남은 인생의 흐름에서 격한 파도를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만큼 키 작은 할머니가 서있다. 헐렁한 옷차림과 숱 없는 머리위로 포근한 모자가 씌워져 있다. 말간 안경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모두 익숙하다. 내려놓은 지난날의 젊음이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위로해주고 있다. 사방을 둘러본 후에 고개를 끄덕인다. 담담한 표정이다. 잠시 후 혼자일지도 모르는 거처를 향해 촘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외로움보다는 가슴속에 가득 채워진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 둘 뒤따르며 회심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렇게 미래의 나와 조우하는 순간이 그림처럼 차분하다. 그 때를 위해 써내려가는  일기장이 오늘따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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