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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손때 묻은 물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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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7.25 15: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김기자 수필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갑자기 낡아진 냄비가 거슬린다. 버릴 셈을 해본다. 이곳저곳 살피다가 이번이 기회라 여기고 사용하지 않는 그릇들과 함께 내몰듯 한쪽으로 밀쳐 둔다. 너무 오래 쓴 탓에 빛은 바래 버렸고 겉 표면조차 나이든 사람의 모양새이니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 미련을 떨쳐내는 것처럼 아예 대문 앞까지 옮겨다 놓았다. 떠나가기 싫은 듯 간절한 몸짓으로 내 눈길을 당기고 있다. 
 
조금 후면 재활용 수거함에 갖다 놓을 작정이다. 그동안 함께 한 세월이 한참인 만큼 막상 버리려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결혼 초부터 요긴하게 써왔던 냄비인데 국도 끓이고 밤과 고구마도 찌는 등 활용도가 다양했다. 그래도 낡았다는 것은 싫증을 불러왔다. 
 
남편이 들어오다가 보았던 모양이다. 아직은 쓸 만한데 왜 버리느냐고 항변을 늘어놓는다. 생각해보니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은 다시 들여 놓게 되었다. 깨끗이 닦아서 본래의 제자리에 옮겨놓기까지 했다. 냄비의 경제적인 가치보다 그동안 내 손에 익숙했던 애착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아무튼 잠깐의 혼란이 잠재워 졌다. 생명체가 아니라 해도 분명 나를 대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운 좋게 그 냄비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문득 늙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길 수 없는 것은 쇠하여진다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과연 훗날 어떤 노인으로 변해 갈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쓰임새를 다한 물건처럼 초라한 모양새로 외로운 날들을 이어가지는 않을지 미리부터 두렵기까지 하다. 세상과 단절되는 그 자체인 것처럼 외로움이 몰려온다. 비록 영혼과 육신이 쇠하게 된다 하여도 존엄성만큼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다. 
 
젊은이는 날마다 노래하며 행복하게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반대편의 노인은 바쁜 인생 고갯길을 뒤로한 채 숨을 고르기에 바쁘다. 이처럼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고독과 함께 멀미를 하듯, 취한 듯, 비틀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어서 조심스럽다. 잃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화려함은 사라지고, 건강을 잃고, 친구를 잃어가고, 가족에게서 멀어져가는 일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애탄할지라도 그 길을 지금 우리가 가고 있다. 
 
요양원에 계시는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생각할수록 옛날과 다른 현실이 씁쓸하다. 뵙고 올 때마다 무거운 마음 내려놓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엄마의 눈빛에서 할 말을 잊어야 했다. 그냥 목숨 줄만 이어져 있는 그 곳의 노인들 풍경이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내 앞에서 일렁이고 있으니 개운치가 않다. 젊은 날에는 어디에서든 필요한 인생이셨을 것이다. 안타깝다 하여도 도리가 없다. 세월의 변화를 탓할까마는 마음까지 무디어지는 세상에서 내 자신도 동조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버리지 못했던 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겉모습에서 되돌아 볼 수 있는 지난날들이 그 안에 담겨져 많은 이야기들을 퍼내고 있다. 행복했던 날들과 힘들었던 날들이 함께 아우성치는 듯하다. 비유하건데 낡은 형상이 되었을지언정 그동안 쌓아온 노인의 지혜가 저 그릇처럼 요긴했음을 깨닫는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몸소 밑거름의 역할을 해 오셨던 분들이 아니던가. 가슴 한 쪽에 닿는 바람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상을 품고 사는 노인이 되어가고 싶다. 물건처럼 버려지듯 함부로 취급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기도 하다. 어떻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다.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의 문제를 나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그림자처럼 살고 계신 친정엄마의 모습과 오래된 냄비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들이 밀려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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