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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하이드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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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8.01 15: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지난 달 친구들과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코흘리개 친구들이 만나 처음으로 떠나는 것인 만큼 들뜬 마음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깔깔대고 수다 떠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어릴 적부터 친구사이로 지내온 관계이고 다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입은 쉴 새가 없다.
 
여행 두 번째 날. 여행을 주선하고 경비 전반을 책임지는 친구가 옵션에 들어가지 않는 곳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나보다. 가이드가 추천하니까 왜 그런 것을 해야 하냐면서 얼굴에 싫은 기색을 내 비친다. 그 친구는 굳이 옵션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 사는 게 계획한대로만 되는가.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선택 관광을 하게 된다. 여행 상품에 선택사양을 넣지 않고 꼭 갈 곳만 미리 선택해서 상품을 만들면 좋을 텐데…. 가격을 내리는 대신 선택해야하는 관광 상품을 만든 것이다. 결국 고객의 주머니에서 여행비를 꺼내는 방법이다. 대부분이 그런 형태로 되어있는 것이 우리나라 여행상품이다.
 
예비비를 걷은 것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인데 아예 집에서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다른 친구와 계산을 해 보니 돈이 부족할 것 같았다. 다음날 예비비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돈을 더 걷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설명을 했다. 말하기가 무섭게 자기는 셈을 잘 못한다면서 짜증을 내더니 경비 관리를 넘기겠다고 한다.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였을까.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데 화를 내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기색이다. 주최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이해하려 노력을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부글거리며 화가 올라왔다. 그냥 넘어 가야하나. 하나하나 되짚으며 따져야 하나. 모르면 묻던지 이야기 해주면 상의를 해서 답을 찾든지 해야지 도대체 뭐하는 것이냐는 생각에 화가 부글거린다. 순간에 터져 나오는 분노가 활화산이 되어 인내심을 삼키려 한다.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친구는 우리를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자기의 학생인 양 취급하는 것이 거슬렸다. 그러나 멀리까지 와서 나 때문에 여러 친구가 기분 상한 채로 여행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분을 삭이며 화나는 마음을 다독였다. 그럭저럭 마무리는 했지만 올라오는 화의 유혹을 이겨내느라 매우 힘들었다.
 
조용히 앉아 나를 뒤돌아보니 화를 참 많이 냈던 것 같다. 젊을 때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곧바로 화를 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세상이 나를 바닥으로 쳐 박는다고 생각할 때. 자식의 일로 속을 끓일 때. 나 뿐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도 불똥을 튀게 했다. 
 
지극히 다혈질인 성격으로 사고 안치고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믿고 자유를 누리게 한 사랑과 적당히 자제할 수 있는 인성을 가르친 가정교육이 덕이다.
 
세상의 살벌한 소식을 접하면서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마음속에 잔인한 하이드의 반란이 더 심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공부하는 기술만 가르친 결과가 아닐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인성적 교육을 더 많이 했더라면 하이드같은 잔혹함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 할 수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하이드의 유혹을 멋지게 이겨낸 내 자신이 참 예뻐 보였다. 태국의 맑고 푸른 하늘이 내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이는 것을 느끼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하이드처럼 난폭해지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점점 잔혹성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지혜롭고 현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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