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엉뚱한 상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6.08.15 16: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이글거리는 도로의 열기가 한여름에 더위를 실감케 했다. 바다에 떠 있는 유람선에 오르니 작렬하는 태양에 달구어진 갑판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내 몸이 다 태울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이 타오르는 여름의 더위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지치게 한다. 
 
유람선 선장으로 있는 남편을 만나러 온 길이다. 대천 항에 도착하니 북적거리리라는 생각은 빗나가고 한산한 게 경기의 침체를 느끼게 한다. 바닷가로 피서 온 사람들도 알뜰한 소비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유롭고 편하게 피서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처음에 갈 땐 일 년만 하고 온다고 했는데 대표가 잡는 바람에 벌써 3년째 일하고 있다. 집에서 쉬기만 하기는 너무 젊다는 생각에 조금 더 활동 했으면 하는 내 생각에 동의해서 또 떨어져 살게 된 것이다. 
 
남들은 퇴직 후 일자리가 없다고 걱정인데, 남편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 있음에도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늘 불평이다. 가족적인 분위기였다면 불만이 덜 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직원 모두가 따로국밥이다. 그런 모습들이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하는 모양이다. 
 
준비해 간 삼겹살에 술 한 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을 풀어진 것 같다. 사람 사는 모습이 어디 편하기만 할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모여 아롱이다롱이로 사는 게 세상사는 것이지.
 
집으로 돌아오려고 나서는데 더위는 아침부터 기승을 부린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자식을 친척집에 두고 오는 어미처럼 뒤가 당긴다. 그냥 다 접고 집에 가자고 하고 싶다. 이 더위에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여성시대를 하고 있었다. 덥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란다. 그러면서 남성MC가 겨울 풍경을 이야기 한다. 
 
나도 겨울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겨울 방학 때였다. 논 위에서 썰매 타기를 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옷이 흠뻑 젖었다, 주위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젖은 바지를 말렸다. 소재가 나일론인 바지는 엉덩이 부분이 불에 오그라들어 뻥 뚫렸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계집애가 꼭 남자애들처럼 논다고 혼났던 기억이 새롭게 웃음을 자아낸다. 
 
얼음위에서 팽이치기, 눈싸움하기 등등. 조신한 여자들이 하는 놀이에는 관심이 없고 남자애들하고 겨울철 놀이를 하던 기억이 줄줄이 구슬 꿰듯 이어져 나왔다. 하나를 생각하니 많은 추억들이 솔솔 기어 나와 겨울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십 여리 길을 통학했다. 하루는 눈이 허리까지 빠질 정도로 많이 왔다. 바람이 많이 부는 하교 길이었다. 바람에 날린 눈이 길과 언덕을 평지로 만들어 놓았다. 길인 줄 알고 디딘 발이 끝 간 데 없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 몸의 삼분의 이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우적거리며 길을 찾아 올라와서는 무서워서였는지 아님 추워서였는지 울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니 몸은 덜덜 떨렸고 옷은 뻣뻣하게 얼어서 벗어 놓은 바지가 입은 모양 그대로 서 있었다. 아버지는 따뜻한 곳으로 바로 들어가면 동상 걸린다고 발을 주물러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이불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선풍기도 없던 그 시절엔 부채나 등물로 더위를 이겼다. 문명의 발달로 쉽게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요즘엔 참을성도 줄어 든 것 같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편안함만을 생각하고 너무 쉽게 버튼을 누른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냉방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겨울의 추억을 생각하니 삼복더위도 참을만했다. 
 
생각만으로도 잠시나마 이렇게 더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늘 나는 어릴 적에 했던 겨울 놀이 속에 푹 빠져 시원한 상상을 하며 더위를 이기고 있다. 남편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지금을 즐겼으면….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