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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무임승차꾼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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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8.28 15: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충청대교수

[충청신문=정관영 공학박사·충청대교수] 폭염에 아스팔트라도 녹일 것 같던 기세등등한 무더위가 이제는 한풀 꺾여 제법 가을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에는 여러 날 전부터 벌초를 한다고 어머니와 동생으로부터 전갈이 있었다. 장남인 내가 먼저 주선을 해야 하는데 번번이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드는 격이었다. 올해는 내가 먼저 서둘러 주말에 보은 회인에 있는 쌍암리 아버지 묘소로 모이기로 했다.

이곳에는 조부모님과 백부모님을 비롯해 20여 기의 조상 묘가 있다. 새벽부터 동생들과 사촌동생, 친척들이 모였다. 세 대의 예초기를 준비했는데 동생들은 하나씩 둘러메고 나섰다.

엔진 시동을 걸자 예리한 예초기의 회전 날이 바람을 일으키며 고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성한 풀들이 잘려 눕는다. 뒤쫓아 다니며 갈퀴로 풀을 모아 버리는 일이 내 담당이다. 읍소하다시피 하여 예초기를 받아 둘러메었다. 요령도 있어야 하고 숙달이 되어야 하는데 난생처음 잡아보는 예초기인지라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던지 동생들은 걱정스레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찍기도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정성껏 벌초를 하는 동생들을 바라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훌륭해 보이기까지 하다. 아버지와 백부모의 묘소는 평지라 어려움이 없었지만 다른 조상묘소는 골짜기에 흩어져있어 갈수록 무성한 정글 같은 숲속을 오르내려야 하고 말벌, 뱀이나 무서운 독충도 피해야 한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벌초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동생들이 땀 흘리며 벌초를 할 때 난 고작 거드름을 피우며 배회했으니 이런 무임승차꾼이 또 있을까.

해마다 이 때쯤이면 산과 들이 시끌벅적하다. 좁은 산길, 들길에 차량들이 몰리고 오랜만에 일가방성의 정겨운 소리들이 예초기의 날렵한 선율과 함께 조상이 잠든 선산의 적막을 깬다. 이 시간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아버지께서는 늘 '사람은 예의와 신의가 근본이다'라고 하시면서 엄한 가르침을 주기도 하시고, 때로는 자상하기도 하셨다. 지난달에는 회인중학교 학생흡연예방교육차 갔다가 아버지 묘소에 들렸는데 마치 아버지가 내게 오신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었다. 보라는 듯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산소에 왔어. 했더니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오늘따라 묘 앞에서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오래된 일이지만 예초기가 처음 등장할 때는 정성 없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불경하고, 불효하는 물건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벌초의 필수품이 되었으니 그도 현대화를 피해가지 못하는 문화의 풍속도가 된 듯하다.

이제 벌초는 풀을 베는 단순작업이 아니다. 생(生)과 사(死)의 세계를 넘나드는 공간초월적인 의식이며 산자가 망자에게 보내는 화합의 메시지인 셈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효심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개탄해도 골짜기마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아직도 조상을 생각하는 고유의 전통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사 때문에 집안 대사가 아니면 친척끼리도 모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예전 같으면 한 동네에 살면서 수시로 모일 법한 일이지만, 요즘이야 그럴 수 없다. 직업도 다양하고 사는 곳도 사뭇 다르다. 애경사가 있어도 모두 모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조상 묘를 찾아 벌초로 땀 흘리고 함께 식탁을 나누면 친척간의 정이 얼마나 도타와질까. 자손들에게도 교훈이 될 것이다.

시간과 형편이 되지 않아 벌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가급적 가족과 친척들이 미리 날을 정해 조상을 위해 땀 흘려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부모는 평생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한다. 그 음덕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 부모와 조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친척들이 함께 하는 벌초는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부모님을 잘 보살펴드리는 일이다. 돌아가신 다음에 아무리 제사상을 잘 차려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무리 묘지를 크고 번듯하게 만들어 잘 관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옛말에 ‘한마당에서 십촌 난다’고 했는데 십촌은 고사하고 사촌도 명절 때나 집안 대소사가 아니면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먼 친척은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遠親不如近隣)'는 말이 있지만 애경사가 있을 때 달려오고 큰 일이 있을 때도 달려오지 않는가.

벌초를 마치고 그늘에 둘러앉아 정성껏 준비한 오찬을 함께했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정담을 나누며 가슴 뿌듯한 행복감에 빠졌다.

이제껏 가정에서는 동생들이 받들어 주고, 직장에서는 선후배들이 보살펴 주어 내가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제껏 무임승차로 살아온 나의 삶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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