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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아버지의 광복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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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8.28 15: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상 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충청신문=이상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내가 어릴 적 아버지의 광복절 아침은 특별했다. 늘 일찍 일어나시던 아버지는 광복절 아침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셨다. 집안을 돌아보고 마당을 쓸고 세수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셨다. 평소에도 한복을 즐겨 입으셨지만 광복절 아침 만큼은 흰색 한복을 입으셨다. 바느질을 잘하시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늘 한복을 손질하여 곱게 싸 두셨다.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아버지는 먼동이 틀 무렵에 장롱 속에 고이 싸 두셨던 태극기를 꺼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광목천에다가 탁하게 그려진 빛바랜 누런 태극기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깃봉을 꺼내어 3미터 정도 되는 대나무 장대의 꼭대기 구멍에 끼우고 태극기를 다셨다. 그리고 사립문 왼쪽에 박혀진 말뚝에 장대를 끈으로 단단히 동여 매셨다. 그리고 나선 한참동안 말없이 멍하니 바라 보셨다. 아버지의 광복절 아침은 다른 국경일의 아침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의 어린 시절 태극기 다는 방법과 태극기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치면서 왜놈들은 지독하고 나쁜 놈들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이 겪은 삶의 역정에 대해선 말씀을 아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제의 처절했던 아픔을 다시는 되새기기 싫었던 모양이다. 
 
나의 어린 시절엔 일본인, 일본사람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은 오로지 ‘왜놈’이었다. 내가 일제시대에 아버지의 처절했던 삶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회갑을 지나면서 돌연사를 하고 난 후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였다. 우리 집안은 일제가 닥치기 전에는 그래도 살만 했다고 한다. 일제의 토지 개혁이 있은 후 몰락의 길을 걸었는데 조상 대대로 살던 집까지 잃어버리는 처절함을 겪어야 했고, 아버지는 8살 때부터 학교 공부도 그만두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늙으신 후에야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외가는 더욱 처참한 곤경을 당했으며 어머니의 일제에 대한 핍박은 차마 입으로 담을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와 큰 외삼촌은 주재소에서 고문으로 인해 돌아가셨다. 나는 그분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일제에 대한 이야기를 아낀 이유를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두 분들에겐 일제에 대한 증오가 모세혈관까지 절절히 배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광복은 정말 새로운 희망이며 비전이었다. 
 
올해의 광복절은 유난히 무더웠고 태양은 작열했다. 그날 아침에 나도 아버지처럼 고이 간직한 태극기를 꺼내어 달았다. 이웃을 보니 태극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며칠 전부터 시청에서 달아 놓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모두들 연휴 나들이를 떠난 것일까? 광복 70년이 넘은 지금, 일제에 대한 분노와 광복절 아침의 감격과 희망은 잊은듯하다. 그러나 나에겐 아버지의 광복절 아침이 늘 새롭게 살아난다. 
 
올해는 리우 올림픽 등으로 광복절 아침은 더욱 조용했다. 올림픽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도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일제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간단했다.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와 사드 배치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외교적 과제가 남아 있으며 한일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하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한일 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만 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일관계가 과거에 얽매여 적대관계로 가서는 안 되며 미래지향적인 호혜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성찰 없이 현재도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하는 망언과 함께 지속적은 역사 도발을 자행하는 그들을 광복절에 만이라도 다시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일본의 독도 망언 등과 함께 많이 회자 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 같다. 과거사를 잊으면 오늘을 잊는 것이며 미래 비전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린 이런 역사적 성찰과 미래 비전의 창출이라는 양대 과제에 보다 더 적극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는 그렇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지속적인 역사 교과서의 왜곡과 독도 망언 등 역사적 침략 미화의 만행을 접하는 가운데, 독일과 폴란드가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해 중등교육 교재로 사용한다는 소식은 교훈과 같은 청량제이다. 독일과 폴란드는 일본과 한국처럼 처참한 침략의 가해국과 피해국 관계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독일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인정하면서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반면, 일본은 협력을 말하면서도 역사를 숨기고 미화하면서 다시 패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더한 것은 우리들 가슴에 일제에 대한 처참함과 광복절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나는 아내와 영화 ‘덕혜옹주’를 보며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은 일제 강점기의 삶을 생각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땅, 이 민족, 후손들에게 처절한 아픔의 역사가 없기를 바랐다. 일본도 독일처럼 과거사에 대한 성찰과 인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광복절은 단지 8월 15일만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성찰과 미래 비전을 다짐하는 살아 숨 쉬는 365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광복절 아침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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