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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조건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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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9.05 15: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김기자 수필가] 초록물결을 이루는 나무는 볼수록 풋풋하다. 잎이 무성해지기까지의 성장단계 때에는 겨울 산 능선위에서 벌거벗은 형상으로 아마도 애처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으리라. 그리고 봄을 지나 여름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는 많은 고군분투를 하며 지내 왔을 것이다. 
 
딸애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기분에 젖어든다. 이제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딸의 모습에서 흐뭇함은 더해지고 더불어 자연의 신비까지 볼수록 새롭기만 하다.
 
취업을 해서 객지로 나갔다. 마냥 어린애 취급을 하던 중이었는데 제 밥벌이를 한다니까 대견키만 하다. 끼니때가 되면 제대로 챙기면서 사는 지 노심초사 걱정이 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심중을 헤아릴 만큼 내 생각은 온통 딸애로 가득 차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마음은 항상 달려가고 있다.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 부부는 은근히 바쁘게 움직인다. 무엇을 먹여야 할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행여 아픈 데는 없는지, 부산을 떨어댄다. 그런 부모를 뒤로 하고 정작 본인은 친구들을 만난다며 외출을 해버린다. 그리고는 한밤중이 돼서야 집에 들어온다. 이 얼마나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단 말인가. 언제까지 이런 사랑에 목을 늘이며 지내는 날이 지속될까 약간은 섭섭하다.
 
나는 지금 지독한 외사랑에 빠져 들어가 있다. 딸애가 내 슬하에서 먹고 자며 지내던 때는 생각지 않던 일들이다. 왜 이리도 성급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차근차근 쌓여있던 내 안의 감성이 크게 일어나 흡사 짝사랑으로 변화된 모양과 다름없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물꼬가 트이며 생겨난 유속이니 어쩌겠는가. 아예 마음전체를 허락하기로 했다. 세상에 어미가 나 혼자만은 아니건만 유난해 보이는 이유가 어디에서 부터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사랑의 열병을 앓는 중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자식이란 원래 끝없는 짝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 주고 있나 보다. 지금 잡고 있는 딸애의 손에서 전해오는 촉감이 그렇다. 그럴지언정 이 순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오롯이 곱씹을수록 싫증나지 않는 관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
 
괜한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다. 언젠가 자식이란 존재도 썰물처럼 내 가슴에서 떠나가는 그날이 오고야 말테지만 미리부터 염려에 빠져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에 매달린 외사랑을 냉정하게 접어내는 일도 싫다. 절대로 내려놓지 못하는 이 지독한 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을 그 애가 알기나 할는지.
 
차갑지 않은 외사랑의 물결에 마음을 맡긴다. 자식이란 눈빛만 바라보아도 느낌이 남다르고 가슴이 요동치듯 떨려오는 느낌이 아니던가. 나이가 작건 많건 간에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딸애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그날이 떠오른다. 간단한 짐들을 꾸려 데려다 주면서 돌아오는 길은 휑한 바람만 몰려왔었다. 그 기억을 더듬을 때 마다 사랑의 두께는 한층 더 해가고 있다.
 
한 뼘 두 뼘 자식의 성장은 바라만 보아도 그저 기쁘다. 그 속에서 나는 지금 편안 해진 가슴 한 쪽을 내려놓으며 삶의 여유를 취하고 있다. 무엇을 먹어도 맛나고 어디를 가도 걸음이 가볍다. 이처럼 사랑의 맛을 알게 만든 뿌리가 어디쯤에서 발원하여 어디쯤으로 뻗어가고 있는 걸까 돌아본다. 거슬러 오른다면 나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도 그 시작과 끝의 중간에서 내 사랑의 몫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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