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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소리 없이 울던 날

김기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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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0.03 17:1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김기자 수필가]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덕혜옹주, 조선의 마지막 황녀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다. 극장 안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숨소리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내려앉게 만든단 말인가. 지나간 역사의 아픔을 되새김하는 진한 여운이 모두에게 스며들고 있는 듯한 순간이다.
 
앳된 나이의 소녀 덕혜옹주, 분명 고귀한 화초에 비교하고 싶다. 그러나 강제로 뽑힌 채 다른 화분에 심겨야만 했던 인생의 역정을 이제야 만인이 알게 되니 참으로 애통할 일이다. 결국 그녀는 일본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채 비운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에서 일어나 쉽게 잦아 들 줄을 모른다. 훗날 이렇게라도 세상에서 드러나 그 영혼이 위로함을 받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스럽다.
 
물론 영화는 실제와 다른 상황이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제작자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잊혀져가는 역사의 페이지를 더듬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폐부에 새겨진 우리의 상처가 회복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휘 젖고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 모두의 마음은 하나였으리라 믿는다. 더불어 저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새로운 불씨 하나 지피며 살아갈 것이라고 추측까지 한다. 나라를 잃으면 개인의 삶 또한 저항할 수 없는 비운에 다다르게 됨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주인공의 역사의식과 주변 인물들이 펼치는 나라사랑에 대한 활약을 보면서 당시 상황으로 치닫는 것처럼 실감은 충분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돌아보면 외부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아왔다. 그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가운데 나날이 회복되어온 역사의 흐름 앞에서 절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리고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절실히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희생과 모두의 노력이 없이는 되찾을 수 없었던 나라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 생각하니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 나라가 있어야 가족이 있으며 나아가서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은 기회였다.
 
요즘 세간에 떠도는 금수저, 흙수저란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군들 금 수저의 운명으로 태어나지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덕혜옹주가 왕의 딸로 태어났다 해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난은 불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기에 그런 생각이다. 차라리 평민의 삶이 그보다 더 원만하게 꾸려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한다.
 
살면서 가끔씩은 내 인생의 몫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흙 수저의 역할을 비하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가 타고 난 환경이 더 낳았더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접기로 했다. 나는 전후 세대로 태어나서 나라를 잃는 민족의 아픔을 겪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일을 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금수저의 운명보다 훨씬 더 평범하고 수월하게 살 수 있었음이 다행이지 싶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에 빠져본다. 지나간 역사를 더듬어 새로운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바도 있겠지만, 가장 마음이 끌리는 것은 한 여인의 애석한 일생에 대해 위로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밖에 점점 잊혀져갈 수밖에 없는 역사 속의 원혼들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자 한다.
 
영화의 반전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아까운 청춘은 메몰 되었고 낙엽 같은 마지막 인생의 페이지를 그렇게라도 내 나라에서 마칠 수 있었던 점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눈시울도 함께 뜨거워졌다. 그 사이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흐름 속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축복이리라. 영화의 주인공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손을 내밀며 눈빛으로만 이야기를 청한다. 아쉬운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어떤 말이 필요할까. 무슨 말로 빼앗긴 인생에 조금이라도 보상이 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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