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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그녀가 가던 날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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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0.10 15: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햇살이 너무 따가워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지는 날이었다. 맑은 날이건만 마음은 폭우를 머금은 먹구름이다.
 
아침 일찍 냄새가 사라지길 기대하며 구석구석 씻겼다. 젖은 몸을 닦아주며 이젠 향기롭거니 했는데 여전히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가슴이 아려온다. 잔디밭에 뒹구는 모습을 보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염주를 돌리며 기도를 한다. 마지막 식사로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고구마를 주었다. 맛나게 먹는 그녀를 보니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 고통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다음 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라고 속삭였다. 기도하면서 돌린 백팔 염주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녀는 6년 전 우리 집으로 왔다. 반짝이는 황금빛 옷을 걸쳐 입고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나타난 그녀는 낯선 환경임에도 편안하게 집안을 돌아다녔다. 전에 살던 곳에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왔다. 그녀를 자주 보러 온다는 것과 그녀의 식량은 자기들이 책임진다하고 돌아가는 전 주인의 발걸음이 무거워보였다. 그녀는 맹인안내견으로 알려진 골든리트리버로 '또야'라는 이름을 가진 개다.
 
입양된 후 가족의 일원이 된 또야는 우리의 사랑을 받으며 6년을 함께 살았다. 남편과 딸은 전화하면 그녀의 안부부터 묻는다. 우리 집 재롱둥이로 든든한 친구로 함께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녀를 태운 차가 출발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잡을 길 없어 그녀가 묵을 집 주변을 손질하기로 했다. 풀이 무성한 곳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거센 소나기가 퍼붓는다. 내 결정을 원망하는 눈물인가. 아니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눈물인가. 내 눈에 흐르는 물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하염없이 흐른다.
 
4시간 후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 아직 따스한 온기를 담은 유골함을 건네받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린다. 이런 상황에 내가 힘들어 할 줄 아는 딸과 아들이 왔지만 딸과 아들도 함께 울 뿐 어찌할 수가 없다. 이겨내는 것은 각자의 몫인 걸 어찌하랴.
 
올 때부터 몸이 건강하지 않았던 그녀는 중이염으로 고생했고 피부병으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약을 바르고 귀 소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천둥번개에 트라우마가 있는지 비가 오는 날이면 불안한 듯 내 손길이 닿아야 조용해졌다. 내 손을 잡고 내 뒤만 따라 다니던 그녀는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자리 자리로 갔다.
 
작년 봄 그녀의 잇몸에 혹이 자라기 시작했다. 가끔 그런 개가 있다는 말에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만 커지는 거였다. 동물병원에 가서 혹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다시 그전처럼 혹이 자라는 것이 아닌가.
 
수술 불가라는 말을 듣고 혹이 있는 채로 일 년을 넘게 잘 살았는데 이젠 몸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 씻기고 난 뒤에도 향기는커녕 냄새 때문에 집안에 들일 수도 없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잘 놀다가도 밤에는 통증이 있는지 앓는 소리를 했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눈동자도 풀렸다. 고통을 가장 잘 참는다는 골든 리트리버. 그런 그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자주 들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고통에 의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안락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더 이상 고통이 없게 하자는 쪽과 윤리적이지 않다는 의견들이 팽배하다. 물론 살 수 있는데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안락사법이 제정 되지 않았지만 외국에 몇몇 나라들은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숨만 쉬는 의미 없는 삶이라면 난 찬성하고 싶다.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안락사를 선택할 것 같다.
 
발코니에 서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의 아담한 소나무 아래 그녀의 집을 만들었다. 향을 사르며 극락왕생과 환생하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라고 기도한다. 아니 어쩌면 인위적으로 보낸 내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서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내린다. 그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기다려 비 그치면 향 피우러 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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