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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끝물고추

김기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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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0.31 15: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김기자 수필가] 가을이다. 가깝게 지내던 이웃으로 부터 끝물고추를 따 가라는 연락이 왔다. 밭고랑에 들어서서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모조리 훑어내라는 주인의 말에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어 고랑을 지나고 보니 많은 양이 모이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버릴 것 없이 모두를 내어주는 고추의 쓰임새가 귀하기만 했다. 사람의 일생도 그 모습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고추를 선별해야 한다. 우선 장아찌용부터 고르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찌개에 넣어먹는 양념용, 그리고 아주 어린 것은 찜용으로 구분한다. 붉다만 것은 햇볕에 말려둔다. 애초에 잎사귀까지 훑어 왔으니 그 작업도 만만치 않다. 고춧잎은 삶아 말렸다가 겨울에 무말랭이 무침에 넣으면 맛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매달려야 했다. 뭣 하나 거저 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보람도 얻는다. 경제적 가치도 있거니와 손수 밑반찬을 만들어 먹는 재미까지  쏠쏠하게 즐긴다. 오랜 시간 끝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문득 내 손을 거친 끝물고추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밭고랑에 그냥 두면 서리를 맞아 쓸모없이 되지만사람의 손길을 통해 여러모로 유용하게 변신해 주는 그런 이로움 말이다.
 
문득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한평생을 농부로 사셨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 공부시키느라고 얼마나 고단한 인생이었을까 하는 마음을 이제야 갖는다. 오로지 평생토록 자식만을 위해 손발이 닳아지도록 알뜰하게 일만 해오셨다. 돈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자식을 위해 주어야 했던 생활이었다.
 
손바닥만한 땅뙈기도 고스란히 자식을 위해 남기고 떠나셨다. 심지어 당신의 장례절차며 비용의 일부까지 준비하고 가신 분이다. 살아계실 때는 그런 부분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막상 떠난 후에야 어떤 마음으로 생을 정리하셨는지 헤아리게 되었다. 아버지가 남긴 빈자리에는 자식들 간에 부모님을 기리는 화목만 고스란히 모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던가. 아쉽고 그립고 못 다한 사랑이 저만큼에서 흔들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깨달음을 가을 속에서 알았다고나 할까? 철없던 시절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많이 쏟아내고는 했었다. 그때는 시골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모두들 어려운 살림살이였으며 지금의 생활상과는 많은 격차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우연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면하고 성실한 부모님들의 역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모님의 세대에서 알뜰하게 꾸려온 삶이 밑거름 역할을 해 왔기에 가능했다고 여긴다.
 
과연 일생동안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까 의문스럽다. 내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남은 가족과 이웃이 부끄럽지 않게 나를 좋은 기억으로 돌아볼지 두려움이 앞선다. 결국 마지막이란 모든 것은 화해가 펼쳐지는 하나의 마당이 아닐까 싶다. 응어리는 풀어지고 낱알이 모아지듯 마음도 하나 되고, 유익하지 못했던 삶속의 냉전들도 따뜻하게 변화되어서 생의 끝자락이 아름답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살기보다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에 이르렀음을 인식한다. 그러기 위해 늘 마음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도 가을 추수와 다를 바 없다. 들녘에서 사라져갈 하찮은 가을고추이지만 여러 가지로 쓰임새의 가치를 남긴 것처럼 나의 일생도 그런 모습이고 싶다. 남아있는 인생의 길 위에서 어떻게 자신을 이끌며 가야 할지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냥두면 못쓰게 될 끝물고추도 사람의 손을 빌어 훌륭하게 탈바꿈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모습도 남은 자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삶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알뜰히 주고 가는 끝물고추에서 오늘 새로운 인생의 과제를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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