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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기억상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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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1.07 15: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모르겠다. 분명 좀 전까지 멀쩡했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차를 몰고 어디로 가는 중이었다. 멀쩡하게 잘 가던 내가 갑자기 상황이 변해버렸다. 차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소지품도 없이 빈 몸으로 낯선 곳에 서 있다.
 
낯선 여인이 내 옆에 있다. 뭔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는 빈 손 임에도 그녀를 위해 지기를 발휘에 그곳에서 탈출시켰다. 그런 내가 고마웠는지 나를 극진히 위해 주고 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집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기억상실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할 뿐이다. 그녀는 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쥐어뜯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휴!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까만 어둠속에서 눈동자를 굴리면서 안심이 되자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이 상황이 꿈인 것이 정말 감사했다.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이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가끔 방영되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정말 그럴까. 아닐 거야. 드라마니까 그럴 거야. 그랬는데 꿈에서 내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웠던 일이 꿈인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치매에 걸린 어른들을 가끔 본다. 올케가 호스피스 요양원에 있을 때다. 암에 걸린 할머니가 앞 침상에 누워있었다. 할아버지의 간호를 받으며 편안히 누워있던 분이 갑자기 나를 보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유혹하는 여자로 느꼈는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욕을 하자 할아버지가 당신 몸으로 할머니의 시야를 가렸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교양 있어 보이고 조용히 누워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욕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매와 암이 같이 온 분이었다. 젊을 때 할아버지의 외도가 있었는지 나만 보면 욕을 해대는 바람에 나도 그 쪽으로 가는 시선을 거두어야 했다.
 
기억상실. 치매. 성격은 다르겠지만 잃어버린 기억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은 같을 것 같다. 상상하지 못한 일을 꿈속에서 겪고 나니 무서웠다. 내가 더 나이 들어 꿈속에서처럼 기억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소름이 끼쳤다.
 
한 달에 한번 요양원에 민요봉사를 간다. 예쁘게 나이 드신 할머니 한분이 하는 노래는 늘 같다. 시앗 본 본처가 남편을 향해 부르는 노래다. “첩의 꽃은 한 시절이요 나의 꽃은 사시절이다.” 기억의 저편에서 머물고 있는 할머니의 외침이다.
 
몸은 늙어 요양원에 계시지만 마음은 젊은 날 남편과의 삶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노래 부르면서 하시는 말씀은 이렇게 노래하면 영감에게 쫓겨난다고 한다. 아마도 과거의 아픔이 마음속에 응어리 져 있는 것 같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한쪽 가슴이 찡해온다. 기억은 옛날에 머물고 있는데 현재는 요양원에서 몸을 의탁하고 계신 것이다.
 
이곳에 올 때면 저 어른들의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일 것 같다.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 드리고 안아드리기도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몸에 얼마나 기쁘실까. 그래도 이렇게 일탈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하시는 그 말씀에 가슴이 더 아파온다. 공연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언제 또 오느냐며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시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 공연 시간을 앞당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누구도 치매가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나 역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꿈속에서 걸린 기억상실은 나를 돌아보고 헛된 삶을 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어른들을 더 잘 살피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봉사 할지 모르지만 몸이 허락하고 목소리가 나오는 한 어른들에게 달려가 안아드리고 손잡아 드리면서 내 작은 재능이나마 나눠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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