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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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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1.23 13: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우종현 법률사무소 정음 대표변호사

[충청신문=우종현 법률사무소 정음 대표변호사]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공직자들이 검찰에 불려나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하는 답이다. 어떠한 질문이 들어와도 나가는 대답은 같다. 문체부 왕차관으로 불리던 김종 전 차관도 그랬다. “모든 사항은 검찰에서 성실하게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맥락도 없이 매번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는 뻔뻔함에 바싹 약이 오른 한 기자가 물었다. “이렇게 말씀하면 된다고 누가 가르쳐 주던가요.”, “들어가시면 못 나오실 텐데 반성하십니까.” 그래도 그는 초탈한 듯 답했다. 모든 사항은 검찰에서 답하겠노라고.

반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프로’답지 않게 멘탈이 흔들렸다. 한 기자가 “가족회사 자금 유용한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십니까.”라고 묻자, 질문한 기자를 잠시 노려보는 실수를 한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이내 입을 앙다물고 답했다.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다고. 평생을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그로서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검찰에 소환되는 상상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 실수는 눈 감아줘도 된다.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과연 어떤 사람이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 정도 돼서 검찰 수사를 아예 거부한다면 모를까. 그런데 하나마나 한 이 대답이 우문현답이다.

첫째, 검찰에 소환되는 피의자가 구구절절하게 사실관계를 밝히는 일은 향후 소송절차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경솔하게 내뱉은 말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많은 관련자들이 범죄에 연루된 때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피의자가 검찰 조사도 받기 전에 말을 한다는 것은, 배우가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 피의자로서는 섣불리 사실을 말해도 안 되고 거짓을 말해도 안 된다.

둘째,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 피의자에게 침묵은 금이다. 괜한 말을 하면 주목을 받고 구설에 오르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 뿐이다. 그러니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모든 사실을 검찰조사에서 밝히겠다고 답하는 편이 안전하다. 더구나 고위공직자들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상황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는 안 된다. ‘민중은 개, 돼지’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패가망신한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경우를 보라.  
 
셋째, 피의자는 검찰 조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그만이다. 피의자는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진술거부권이 있으므로 어떤 질문에든 답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검찰이나 경찰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면 처벌을 받게 되므로 피의자의 피의사실이나 수사경과에 대해서 외부에 알릴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검찰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고 했던 피의자들이 조사를 잘 받고 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검찰의 조사는 공소장이라는 결과물로 요약되어 나타나겠지만, 피의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담긴 수사기록은 몇몇 소송관계자들만이 볼 수 있는 비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를 위해서 보장되고 있는데다가,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수사기록의 공개로 인해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거나 수사기록은 수사기관의 내부문서로 소송기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시스템이 무력화된 사상초유의 사태. 우리는 국가를 무너뜨린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에서 어떠한 말을 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야, 우리는 이 어이없는 사태의 진실을 파악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검찰이나 특검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 제기 이후 시민들의 알권리 충족과 진실 규명을 위해 관련 수사기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기를 기대한다. 기록은 역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끄러운 오늘의 기록을 공유하고 남겨두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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