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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촛불을 끄지 마세요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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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15 15: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촛불’의 시인 신석정(辛夕汀)은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시인은 해가 뉘엿뉘엿 져 아기가 잠덧을 하는 시간임에도 엷으나마 남아있는 저녁 해를 붙잡으려 합니다. 시인은 어둠이 오는 걸 꺼려하고 있지요. 평화와 낭만이 깃든 이상(理想)이 어둠에 묻혀 버리는 게 두렵습니다.
 
하지만 필연 어둠이 오면 촛불을 켜야 합니다. 촛불은 부정과 악의 상징인 어둠을 밀어냅니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힘은 ‘자기희생’에서 나오지요. 스스로를 태우는 희생은 경건하고 엄숙합니다. 그래서 광장의 촛불엔 뭉클한 감동이 있습니다.
 
유모차에 젖먹이를 태우고 나온 30대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이런 나라를 아이에게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고등학생은 각자의 실력보다는 부모의 능력과 권력에 의해 대학에 가고 성공하는 반칙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청장년들은 헌법이 무시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사태를 절대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말합니다. 60대 어르신은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를 찍었나?”하는 자괴감과 회한으로 촛불을 들었답니다. 광장에서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촛불은 옛것을 넘어 새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촛불의 시대정신은 국민이 주체이고 국가는 객체임을 선포합니다. 광장에서 목 터지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외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무엇이 잘못돼 있는 지를 알아버린 시민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 탄핵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전제조건에 불과하다고 시민들은 보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벌써 퇴진 이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촛불 너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순실게이트’는 보여줬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부패로 쇠락하고 불평등이 켜켜이 쌓인 일들을 어찌 셀 수 있겠습니까.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고 자족했었습니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헌법적 가치와 국민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홀대받는 상황은 바로 잡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불평등과 부조리, 반칙과 협잡이 횡행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정과 불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마치 성공한 사람들의 특권이나 자랑이 되는 사회는 결코 우리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되겠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공무원에게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키고, 그 원칙은 앞으로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걸.
 
특권을 철폐하며 무소불위의 검찰과 대통령 권력을 법 아래에 두는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걸. 재벌이 대통령의 청부업자 노릇한 청와대 수석과 최순실의 측근들에게 돈을 주면서 총수의 경영권 승계와 사면, 형제간 경영권 분쟁, 세무조사 편의를 맞바꾸기하는 정경유착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걸.
 
판을 바꾸는 대변혁이 필요합니다. 오래된 묵정밭은 파 뒤집어야 다시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모든 걸 한꺼번에 확 바꾸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거 압니다.
 
이 같은 논의를 차기 정권을 잡는 데만 정신이 팔린 정치권에 맡겨 둘 게 아닙니다. 이제 촛불은 옛것을 깨부술 뿐 아니라 새것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론의 장에 모든 걸 다 올려놓고 토론을 거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닥이 잡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집단지성의 빛으로 이 땅의 어둠을 걷어내는 것이 촛불 이후의 촛불입니다. 촛불에 담긴 평화의 혼, 민주공화의 정신을 지켜내는 건 주권자인 국민의 몫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자신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촛불을 꺼뜨려선 안 됩니다. 촛불 이후의 촛불이 더 밝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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