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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광장에서 원탁으로

이상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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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25 16: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상 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충청신문=이상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대한민국 국민이 위대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란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시위는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하루 최대 232만 명이 모였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촛불을 들고 나섰으며, 각종 공연과 함께 자유발언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8차에 걸친 촛불 시위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한층 고양시킨 성숙한 시민사회로 가는 가교였다. 시민들은 행진을 가로막는 경찰에게 핫팩이나 음료수 등을 건네며 ‘경찰은 적이 아닌 같은 국민’이라고 했다. 폴리스라인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고생한 경찰들을 위해 한번 안아주자”라는 시민의 제안에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의 포옹이 이어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서로를 신뢰했다. 
 
해외언론과 전문가들도 놀랐다. AP통신은 ‘가족 단위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시위는 가족 오락의 형태를 보였으며, 시위 강제성을 상징하는 몸싸움과 경찰 물대포는 볼 수 없었다’고 했으며, CNN도 ‘눈이 오는 추운 날씨에도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우산을 쓰고 촛불을 든 채 청와대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고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같은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수백만의 한국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은 매우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전 세계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도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투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교육과 토론 등을 통해 시민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 촛불집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야심찬 포부로 가는 첫걸음이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촛불 시위는 1990년대 초에 ‘인간띠 노래 혁명’으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이룩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못지않게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Vilnius에서 맞잡은 손길은 라트비아 Riga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이르는 장장 600km가 넘는 길을 사상 최대 200여만 명이 인간띠를 이루고 독립을 갈망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독립했다. 
 
만주주의와 광장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광장문화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에서 기원을 찾는다. 아고라는 고대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에 있는 광장이었다. BC 5세기의 그리스인들은 아고라에 모여 일상적인 종교 ·정치·재판·사교·상업 활동을 했다. 아고라는 연극 무대와 운동장으로도 쓰였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유명한 호메로스는 아고라가 물리적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 자체도 의미하며, 아고라의 유무(有無)에 의해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을 구분한다고 했다. 아고라는 광장문화의 고전이며 상징이었다. 
 
광장에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의견과 시민의 분노와 요구가 분출되기도 한다. 광장은 워낙 의견이 다양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광장자체에선 조율하기 어렵다. 거기에 분출된 의견과 분노와 요구는 정치인들이 정책에 반영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원탁(圓卓)의 문화이다. 
 
정치인들은 광장의 분노와 요구를 원탁으로 가져와야 한다. 6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군주 아서왕 시기에 등장했던 원탁은 평등한 의견 조정의 상징이었다. 아서왕은 바위에 꽂힌 명검(名劍) ‘엑스칼리버’를 뽑아 캐멀롯 왕국을 태평성대로 이끌었고 결국 영국을 통합했다. 그리고 지방 토호세력인 기사(騎士) 150여명을 상하 구별 없이 원탁에 앉게 해 회의를 가졌다. 원탁을 만든 아서왕은 영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만든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원탁의 정신은 평등한 관계에서 문제를 검토하고 대화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우세한 힘을 이용하여 밀어붙이거나 은밀한 방법으로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은 원탁의 정신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서로 책임 공방을 하면서 분열되고, 야당은 밀어붙이기로 기선을 제압하는데 급급하다. 말로는 안보와 민생을 논하지만, 그들의 머리속엔 정치적 이해관계만 남아 있는 듯하다. 국민들의 위대한 촛불 정신에 비하면 저급하기 이를 데 없다.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생각한다면, 기득권과 기 싸움을 멈추고 진정한 원탁으로 돌아와 광장의 분노와 요구를 반영하여 대화와 합의를 통한 상생의 정치를 하여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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